한국이 열광한 <엘리멘탈> 픽사가 새롭게 선보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2023년 여름, 그야말로 독보적인 화제작이었다. 6월 14일 개봉한 이후, 현재까지 약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700만’이라는 수치를 돌파한 것은 독보적인 기록이다. 디즈니의 '겨울왕국2' 개봉 이후 최초다. 외신은 ‘엘리멘탈’의 존재감이 한국에서 더욱 빛났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관객들이 ‘엘리멘탈’에 열광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적 정서’다. 엘리멘탈의 제작을 총괄한 피터 손 감독은 다름 아닌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1970년대, 한국 땅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고 살아온 부모님과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 속에 녹여냈다. 적재적소에 담긴 자잘한 한국적 요소들은 한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공감을 끌어냈다. 유독 한국에서도 20대 여성이 ‘엘리멘탈’에 애정을 표한 점이 흥미롭다. CGV의 집계에 따르면 엘리멘탈을 예매한 관객의 69%는 여성이었고, 세대별로는 20대가 38.5%로 1위를 차지했다. ‘엘리멘탈’은 서로 다른 네 가지 원소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로, 상반되는 속성을 지닌 ‘불 여자’와 ‘물 남자’의 모험과 로맨스가 그 중심에 있다. 하지만 20대 여성들은 ‘엘리멘탈’에서 다른 이야기를 읽어냈다. 바로 불 여자인 딸 ‘엠버’의 서사다. 가부장적 질서 아래 갈등하면서도 부모님의 희생에 부채감을 느끼며 ‘착한 딸’로 살아가는 엠버의 솔직한 내면에 공명한 것이다. 매번 따듯한 가정과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던 디즈니이기에, ‘엘리멘탈’이 보여준 ‘불 속성 효녀’의 행보는 독보적이다. 엘리멘탈에 녹아든 ‘유교’ 픽사의 애니메이션에서 ‘유교의 향기’를 느꼈다면, 틀리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 엘리멘트 시티에 새로운 터전을 꾸린 엠버의 부모님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파이어 타운에 작은 가게를 차렸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 가게를 딸 엠버가 이어받기를 소망한다. 그 소망은 ‘이제는 은퇴를 하고 싶으니, 딸인 네가 어서 준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러한 부모님의 꿈은 때로 억압이 되기도 한다. 가정이 정하는 룰은 아름다운 질서를 구축하기도 하지만, 족쇄처럼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 엘리멘탈에는, 그 꿈 아래 갈등하며 살아가는 ‘엠버’가 있다. 사소한 일에 발끈하곤 하는 그녀는 부모님의 바람을 거부하지 못한 채 속에 화만 쌓였던 ‘외동 장녀’의 삶을 대변한다. 엠버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담과 피로를 느끼면서도 ‘자신을 위해 온 삶을 바친’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애쓴다. '착한 딸'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착한 딸이란, 부모님이 원하는 삶에 충실한 존재다. 그 프레임에서 벗어 나는 건, 도덕성을 떠나 관성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래서 엠버는 무의식적으로 ‘효녀’의 길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 마음을 부정하고 자책한다. 엠버는 자신의 가정을 사랑한다. 늙어 가는 아버지는 애틋하다. 어서 더 훌륭한 어른이 되어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하지만 마음의 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다. 픽사는 이렇게 부모님의 은혜와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딸들의 존재를 입체적으로 발화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엠버의 ‘유리 공예’라는 고유한 재능을 보여주며,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욕망하는 멋진 '불효녀'들의 삶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착한 딸로 살지 않아도 괜찮아! 대한민국의 딸들이라면 누구나 빠져들 이야기다. 엘리멘탈, K-장녀를 조명하다 엘리멘탈을 시청한 20대 여성, 특히 ‘장녀’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에 재학 중인 24세 ‘K씨’를 만났다. 그는 집안의 첫째 딸로, 두 살 어린 동생이 있다. K씨가 엘리멘탈을 관람하게 된 큰 이유는 ‘독특한 소재’였다. “개인적으로 디즈니, 픽사의 영화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현실과는 거리가 멀고 제작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들에 끌리는데요, 이런 취향이 ‘엘리멘트 시티’로 저를 이끈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원소들이 공존하는 도시라니, 너무 매력적인 소재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화를 보며 어느새 ‘엠버’와의 교집합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저는 엠버의 희생적인 부분과는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엠버만큼 가족에 애틋함을 느끼는 편도 아니고, 하고 싶은 건 어떻게 해서든 다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 때문에... (웃음) 하지만 엠버에게 정말 많이 공감했고, 마지막에 엠버와 엠버의 아버지인 ‘아슈파’가 맞절을 하는 장면에 서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도 부모님께 부담이 될까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말씀 드리지 못했던 적이 있고, 최대한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으려고 노력한 시간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엠버 역시 가게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한참을 망설였던 저를 겹쳐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엘리멘탈’이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불완전이 완전으로 향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엠버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갉아 먹었지만, 그걸 벗어나 스스로의 꿈을 위해 한 발 내딛는 서사는 그녀가 성장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장 서사를 여성캐릭터를 통해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많은 여성 관객이 호감을 표했다고 생각합니다. 엠버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이 닮아있는 데에서 오는 공감을 넘어,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 캐릭터의 성장을 담은 영화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작년에는 K-장녀를 주제로 칼럼 과제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는 ‘K-장녀’라는 개념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저는 ‘K-장녀’라 하면 ‘책임감’이 가장 많이 떠오릅니다. ‘너 보고 동생(들)이 배운다’, ‘엄마 아빠 없으면 네가 동생의 엄마다’, ‘네가 길을 잘 닦아놔야 동생(들)이 그대로 따라간다’ 같은 말들, K-장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 아닌가요? 이런 말을 듣고 자란 탓에 ‘K-장녀’는 맡은 바를 반드시 다 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잘’ 해내야 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커요. 그리고 실제로 제가 겪어 온 저와, 제가 만나온 K-장녀들은 대부분 책임감이 큰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K-장녀 레이더 마냥 또 다른 장녀들을 곧바로 알아채곤 합니다.” 그는 밖에 나가면 세상만사에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을 희생하는 데 충실한 딸들의 모습을 금방금방 알아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엠버’의 캐릭터가 한국의 딸들과 공유하는 특징이 ‘참을성’이라고 짚었다. “극 중에서 엠버는 화를 잘 참지 못합니다. 무리한 요구를 서슴없이 하는 손님을 참다못해 가게를 태워 먹기도 하고, ‘레드닷 세일’ 때는 밀려드는 손님들을 받아내다가 화가 터져 집의 파이프를 터뜨리기도 하죠. 엠버는 스스로 이렇게 화를 낼 때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해 봐야 한다’, ‘참아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자신을 반복해서 설득합니다. 한국의 딸들은 대부분 집에서 한 번쯤은 네가 참아, 라는 말을 듣습니다. 동생이 있다면 네가 언니, 누나니까 참고 동생에게 양보하란 말을 듣고, 아빠와 싸울 때면 자식이니까 네가 참으란 얘기를 듣게 됩니다. 남들이 화를 해소하는 방법을 배우는 동안 딸들은 참으라고 세뇌당합니다. 이것 때문에 참다못해 감정이 터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엠버와 ‘아슈파’의 사이가 좋게 그려짐에도, 아슈파가 엠버에게 엠버의 화보다 손님들의 입장을 먼저 이해해 보라고 하는 말이 원망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극 중에서 엠버는 결국 부모님이 물려주는 가업을 거부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여정을 떠난다. 이 모습이 어쩌면 ‘불효녀’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 엠버의 ‘착하지 않은 ’선택을 지지하게 되었을까. “저는 엠버의 선택을 응원합니다. 엠버는 지금까지 부모님이 일궈 오신 가게 ‘파이어플레이스’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엠버가 자신의 꿈을 좇아 파이어플레이스를, 부모님의 곁을 떠나는 이유는 엠버가 ‘불효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이제는 자신을 위해 타오를 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엘리멘탈’ 같은 인기 애니메이션에 ‘딸’의 정체성이 부각되는 것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가정 내 ‘딸’의 위치를 보면 영화 <엘리멘탈>이 세상의 모든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해집니다. 대체로 ‘딸’은 가정 내에서 가장 약자입니다. 부모님보다 어리기에 저자세를 요구받고, 여자이기에 돌봄노동에 대한 기대치를 부여받습니다. 이는 가정에 대한 애정과 책임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 잘 반영한 것이 영화 초-중반부의 엠버입니다. 어쩌면 수백 번 고민을 반복한 끝에 엠버가 자각한 사실은 다름 아닌 ‘나는 가게를 이어받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엠버에게 곧 가게는 부모님이고, 가정이고, 집입니다. 그것을 평생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겼던 생각이 깨지면서 엠버는 방황합니다. 하지만 결국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부모님께 고백하게 되고, 꿈을 찾아 집을 떠나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영화가 ‘딸’에게 강박에 메여있지 않아도 된다, 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영화 <엘리멘탈>은 세상의 딸들에게 해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엠버가 여성이자 ‘딸’로 그려져야만 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엠버의 성장, 딸들의 성장 ‘엘리멘탈’은 로맨스에 그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물 남성 웨이드’를 만나 ‘엠버’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1차원적인 이야기로 비추어질 수 있겠지만, 영화를 주도하는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엠버다. 영화의 전개는 내내 엠버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이루어진다.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하려 스스로를 얽매던 모습과, ‘파이어플레이스’ 너머의 세계에 두려워하면서도, 모험을 통한 성장을 일구는 것도 엠버의 몫이었다. 결국에는 자신의 꿈을 따라 여정을 떠나는 그녀의 모습에 무엇보다 여성 관객들은 깊은 공감을 느꼈던 것이다. ‘딸’을 대변한 엠버의 이야기는, 스크린을 넘어 ‘딸’로 살아가는 많은 여성에게 위로로 다가갔다. ‘엘리멘탈’은 갈등하고 망설이는 딸의 존재를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애틋한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누군가의 ‘자녀’로 살아가는 데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르라는 응원을 전한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는 ‘참으며 살아가는 삶’에 익숙했던 여성들에게 큰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20대 여성들이 ‘엘리멘탈’의 흥행을 견인할 수 있었던 힘은 여기서부터 온다. ‘엘리멘탈’의 주인공은 바로 그들이었기에. 영화사에서 남성 캐릭터의 성장과 모험 서사에 여성 캐릭터들은 쉽게 묻히고, 수단으로 소비되어 왔다. 혹은 ‘로맨스’의 한계에 갇혀, 남성 캐릭터와의 만남을 거쳐야만 구원이 가능했다. 하지만 ‘엘리멘탈’은 달랐다. 인간으로서의 ‘딸’, 즉 잊히고 억압받았던 많은 여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엘리멘탈’이 쏘아 올린 불꽃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소외되었던 여성들의 진솔한 삶을 그리는 영화들이 새롭게 등장하길 바라본다.
지난 8월 1일부터 9일까지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보통 일본에 열흘 가까이 머무는 일은 드물지만, 가고 싶은 장소가 많아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교토, 오사카, 도쿄 세 도시를 방문했고, 첫 여행지는 교토였으며, 이 이야기는 교토 2일 차에 있었던 일이다. 첫째 날 밤 저녁, 막내 이모의 연락을 받았다. 이모는 여행사 직원이시다. 말 그대로 ‘여행 만렙’. 하나뿐인 조카가 어른이 되고 처음 가는 해외 여행이니 마음을 써 주신 것일 테다. “여행은 잘하고 있니? 여기 이모 교토 최애 장소야. 친구랑 맛있는 거 사 먹어~” 이모는 채팅창으로 한 초콜릿 가게의 주소를 보내셨다. 용돈 십만 원도 함께 송금해 주셨다. 어머니에게도 과자를 사 오라는 부탁을 받은 터라, 그걸 보고 아, 이모도 일본에 간 김에 초콜릿을 사 오라고 완곡하게 부탁을 하시는구나, 짐작했다. 둘째 날은 일정이 정말 빽빽한 날이라 예상치 못한 행선지에 잠시 걱정이 스쳤지만, 다행히도 가게는 여행 동선에 포함되어 있던 헤이안 신궁 근처였다. 헤이안 신궁에서 철학의 길로 넘어가기 전, 잠깐 들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8월 2일, 헤이안 신궁에 들른 뒤 이모가 알려주신 주소를 구글 맵에 입력했다. 현 위치부터 가게는 도보 9분. 그날은 무척이나 더웠다. 긴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는데 땀 때문에 다리에 치맛단이 척척 달라붙었다. 지친 채로 초콜릿 가게 앞에 도착했다. ‘open’ 팻말을 확인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문턱 안쪽은 공기가 바깥보다 3도 정도는 낮은 듯했다. 작은 마당에 나무가 빽빽했다. 향냄새가 진해 머리가 아찔했다. 가게의 문이 열려 있어 안을 슬그머니 들여다봤지만 드리워진 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많이 독특하네. “아노-스미마셍” 벨을 눌러 보았지만 답변이 없었다. 밖으로 나가 다시 한번 팻말을 확인했다. ‘open’이 맞는데.. 떠나야 하나, 생각한 찰나 가게 주인이 천을 들치며 나오셨다. 날 맞이한 건 뜻밖에도 나이가 지긋하신 서양인 사장님이셨다. 조금 마른 몸, 긴 금발 머리에 타비 양말. 목소리가 굉장히 나긋하셨다. “come in” 느릿한 첫인사였다. 가게 주인장의 인사일 뿐이었지만, 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다다미 마루가 매끈하게 밟혔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사장님께서 이쪽으로 앉으라는 듯 손짓을 하셨다. 두꺼운 방석 위에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사장님이 안쪽으로 들어가셔서 메뉴판을 가져오셨다. 많이 해진 종이, 필기체로 적힌 메뉴. 모든 것이 신비롭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16개짜리 세트를 고르고, 테이크아웃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장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you can try this chocolate. Please wait a moment…” 테이크아웃을 하는데 초콜릿을 매장에서 따로 챙겨주신다고..? 놀랐다. 한편으로는 당황했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빨리 가야 하는데, 다음 일정이 있는데.. 마음이 초조해졌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수제 초콜릿집이었고, 제조까지 시간이 걸리는 구조였다) 아, 여기 와 있다고 이모에게 말씀드려야지, 전화를 걸었다. “이모 초콜릿을 사러 왔는데요..” 뜻밖에 이모는 웃음을 깔깔 터트리셨다. “어머 이 더운 날씨에 무슨 초콜릿을 사 와.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오라고. 거기에 아마 쉐리 언니도 있을걸~”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얼마 안 되어 사모님께서 초콜릿이 담긴 큰 쟁반을 들고나오셨다. 그 쟁반을 보고 나와 일행은 적잖이 놀랐는데, 장미꽃과 해바라기가 곁들여진, 말도 안 되게 아름답고 정성스러운 모습이었다. 우습지만, 그 꽃들 사이 정갈하게 놓인 두 개의 초콜릿과 자그마한 포크를 마주한 순간, 초조했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었다. 이렇게나 정성스러운 대우 앞에, 얼른 목적을 달성하고 이곳을 떠나고자 했던 계획을 세운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탐스러운 그 꽃들은 나에게 ‘머무르라’ 말했다. 편히 쉬다 가라고. 일행에게 은각사의 입장 시간이 언제까지인지 속삭여 물었다. ‘5시’. 시간은 이미 6시를 넘기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난 뭘 서두른 걸까. “나 철학의 길도 은각사도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우리 여기 있자.” 사모님은 곧 차를 두 잔 내오셨다. 입술을 적셔 보니 볶은 콩 향이 올라왔다. 사모님은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셨지만, 용기 내 물었다. “당신의 이름은 쉐리인가요?” (이하 사모님을 ‘쉐리’라고 칭한다) 맞다고 하셨다. 아, 이모가 말한 그 분이 맞다. 어디서 오셨나요? 캐나다 사람이에요. 그게 긴 대화의 시작이었다. 난 영어를 잘 못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다정하고 말씨가 여유로운 분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뿐. “한국에서 오셨죠. 어느 동네에서 왔나요?” “네. 서울 근처에서 왔어요. 경기도라는 지방인데, 하남시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단순히 출신을 묻고자 건넨 질문이 아닌 듯했다. 쉐리는 자신의 추억을 느릿느릿 회상했다. “한국.. 부산에 가 봤어요. 불꽃놀이를 보러 갔었는데(광안리 불꽃축제를 말씀하시는 듯했다), 정말 크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어요.” “저도 부산에서 불꽃축제를 본 적이 있어요. 정말 멋지죠.” “광주에도 가봤어요. 음, 한국에는 광주가 두 개 있더군요. 이름이 같아서 엉뚱한 동네로 찾아갔던 기억이 있어요.” “이런. 저희가 사는 동네 옆이 바로 그 ‘광주’에요. 묶어서 ‘광주하남’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신기하네요. 어쨌든.. 부산에 갔을 때 바다가 정말 아름다웠어요. 물이 주는 힘이라는 게 있죠.” 휴대폰 사집첩을 열어 부산에서 요트 투어를 다녀온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사장님은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교토에도 종종 보이는 하천들이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교토는 정말 여유롭고 멋진 동네 같아요.” 쉐리는 이야기가 길어지자 주방에서 아이스바 두 개를 꺼내왔다. 이건 덤이에요. 안에 팥이 든 녹차 맛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말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여유를 누리기 어려워요. 한국 청년들은, 저희도 마찬가지고, 정말 바쁜 삶을 살아요. 모두가 열정적이에요.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요. 교토라는 동네가 참 부러워요.”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니. 한국 청년의 고충을 교토의 초콜릿 집에서 넋두리하고 있다니. 사모님께서는 친분이 있는 한국의 치과 의사 이야기를 해 주시며 그들의 자식들도 영어 공부를 치열하게 하더라, 이야기해 주셨다. “다들 영어를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제 남편도 그렇고(쉐리의 남편은 일본인이다) 저를 보면 다들 영어를 쓰는 게, 사실 여기서는 ‘신기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뜻밖의 이야기였다. 보통 영어를 잘하는 것이 우리 사이에서는 자랑인데, 또 어떤 사회에 살아가는 외국인에게는 영어란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싸르르, 했다. 사실 이곳에 와서 내가 여행을 온 한국인처럼 보이기보다는, 전혀 눈에 띄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존재이길 원했다. 그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갔다. 쉐리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포장하겠다 말했던 초콜릿 준비가 다 되었다. 쉐리는 정성스럽게 초콜릿을 포장하고 또 보관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꼭 호텔 프런트에서 냉동 보관을 해 달라고 말을 해야 해요.” 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가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용기를 내 한마디를 건넸다. 초콜릿 가게 사장님께 건네기엔 낯부끄럽고, 손님인 내가 이런 말을 하기엔 너무 낭만에 취한 게 아닐까. 우리가 무슨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라도 된 것처럼. 하지만 꼭 하고 싶었고, 대답을 듣고 싶었다. 나에게 행복했고 애틋했던 시간이었던 만큼 쉐리에게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I will remember our time ever. I hope you feel the same.” “well.. we can’t hold on to every moment, but I think I can remember this time.” 그 말 한마디에 행복감을 견딜 수 없었다. 가슴 속에서 따뜻한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목이 메었다. 도쿄에서, 두 이방인이 나눈 마음이었다. “bye. See you again.” “bye” 대문을 넘자, 꿈에서 깬 것 마냥 멍했다. “은각사도 철학의 길도 가지 못했지만, 나 하나도 마음에 걸리지 않아.” “쉐리도 조금은 들떠 보였어. 계속 대화를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어. 들려줄 이야기가 많아 보였고, 어떻게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모든 아쉬움을 단번에 압도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교토의 초콜릿 집이 알려주었다. 왜 이모가 ‘그 집 초콜릿’이 아닌 ‘그 초콜릿 집’을 사랑한다 하셨는지 이해했다. 쉐리와 나눈 이야기가 그 어떤 관광지의 매력보다 진했다. 지친 마음은 처음 만난 푸른 눈의 외국인과 쉬어갔다. 세상만사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만날 수 있는 기적 같은 순간들도 있다. 난 아마 오랫동안, 세상의 속도에 치일 때마다 느리고 나직한 쉐리의 목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뉘엿뉘엿 지는 아름다운 노을 아래, 호텔까지 40분을 걸어 돌아왔다. 그 40분 동안 교토의 풍경을 눈에 곱씹어 담았다. 입안에서 천천히 녹아내렸던 생초콜릿처럼.
'대학언론인 아카데미 시그니처 코스 4기'가 오는 9월 4일부터 27일까지 4주간 연다. 대학언론인 아카데미는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생과 대학언론인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대학알리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이하 대언넷)가 아름다운재단과 구글 뉴스이니셔티브의 지원으로 진행한다. 현직 기자, PD, 구글 뉴스랩 티칭펠로우가 강사진으로 참여한다. 대학알리 김연준 대표는 "대학언론인 아카데미는 언론인의 기초 소양 증진부터 디지털 저널리즘 활용까지 실무 중심이라는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강생들에게 무상 제공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규민 대언넷 의장은 "대학 언론인 대상 아카데미가 다시 열리게 돼 매우 기쁘다"면서 "양질의 대학 언론인 교육을 위해 대언넷도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다. 기사 작성 및 기획, 탐사보도 방법론, 데이터 저널리즘, 구글 뉴스랩 강의 등이 매주 차례대로 진행된다. 강의 세부 정보는 아래와 같다. 강의는 4주간 평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에 열린다. 전면 온라인 방식이다. 수강 희망자는 단체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신청해야 한다. 모든 강의 이후엔 질의응답 시간이 마련돼 있어 강사와 자유롭게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다. 수강 신청 및 자세한 설명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공연에 진짜 꿀벌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제가 꿀벌이 등장한다고 말하면 꿀벌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꿀벌입니다. 그럼 공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꿀벌이 등장한다.” 여기, 꿀벌을 연기하려는 한 명의 인간 배우가 있다. 이 인간 배우는 서울시민이자 누군가의 딸이며, 불혹의 비혼 여성이다. 이제 곧 꿀벌을 연기해야 하는 인간 배우의 사방에는 트램펄린과 플레잉 요가를 위한 해먹, 공중에 달린 마이크, 꿀벌 무늬를 연상시키는 프릴치마와 날개옷 같은 것들이 비치돼 있다. 배우는 어떻게 하면 인간인 내가 인간이 아닌 꿀벌을 연기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중력을 거스르는 연습을 하기 위해 트램펄린 위를 방방 뛰며 마이크에 대고 대사를 외치기도 하고, 해먹에 매달려 꿀벌 자세를 취해보기도 한다. 벽에 걸려있는 와이어를 몸에 연결해 극장 천장까지 붕 뜨며 ‘비(Bee)-’ 하고 울기도 한다. 인간인 이 배우는 왜 굳이 비인간인 꿀벌을 연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배우의 질문과 사유를 그린 실험극, ‘B BE BEE(비비비)’가 배우 성수연과 함께 서울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8월 9일부터 19일까지 공연된다. ‘인간 중심적’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연습’ ‘인간 중심적’ 사고란 세상을 이루는 모든 구성물을 인간을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사고방식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쉽게 대상화하곤 한다. 성별이나 인종, 나이 등이 다른 인간을 대상화하기도 하지만, 아예 종이 다른 무언가를 대상화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꿀벌은 그저 꿀을 좋아하기 때문에 쉴 새 없이 꿀을 모으지만, 인간은 그 모습을 보고 ‘부지런함의 대명사’라고 일컫는다. 배우가 인터넷 검색창에 ‘꿀벌’을 검색하면 뜨는 기사 헤드라인을 나열하는 장면도 있다. 헤드라인에 쓰인 단어들은 모두 인간이 꿀벌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은 어떻게 될 지 등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각자의 주체성과 당사자성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인간은 그런 점을 망각하고 쉽게 누군가를 타자화, 약자화한다. 배우는 이런 ‘인간 중심적’ 사고가 만들어 낸 생각의 틀 안에 서서, 어떻게 하면 그 틀을 깨고 앞으로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지를 관객 앞에서 ‘연습’하기 시작한다. “너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야” 무대 위에 등장하는 인간 배우는 오직 한 명이다. 그러나 그 인간 배우에게 조언하거나 야유를 보내고, 연기에 필요한 음향을 내보내 주는 비인간 배우들이 있다. 바로 ‘코러스’와 ‘코러스장’이다. 6개의 스피커와 1개의 확성기는 무대 위를 채우는 또 다른 배우가 돼, 인간 배우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코러스들은 꿀벌을 연기하려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이동’할 것을 요구한다. 몸의 중심을 이동하라, 무대의 중심에서 이동하라, 생각의 중심에서 너 자신을 이동시켜라. 이 비인간 코러스들은 인간 배우에게 계속하여 “너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코러스는 배우에게 ‘너에게 가장 중요한 이가 누구인가’를 물은 다음, 지금 그 옆에 있을 것 같은 누군가를 말하라고 한다. 그리곤 지금부터 그가 너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식으로 계속하여 ‘소중한 사람의 곁에 있는 사람의 곁에 있는 것…’을 말하게 한다. 처음 시작할 때 배우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엄마’였지만, 일련의 과정을 거쳐 어느새 배우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미역을 따는 해녀’가 돼 있다. 또한 공연의 대사는 관객이 기존의 사고체계를 벗어나도록 유도한다. 코러스에서 랜덤한 단어들이 빠르게 쏟아져 나오면, 배우는 그 단어를 듣고 속도에 맞춰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는다. 빠른 템포의 배경음악과 정신없이 점프하며 대사를 외치는 배우의 몸짓은, 우선 관객들의 머릿속을 분주하게 만든다. 그에 더해 배우는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나를 중심으로 말하지 않기’ 연습을 한다. “나는 물을 마신다” “물이 나에 의해 마셔진다” “물이 텀블러에서 한 인간의 몸속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배우는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방법을 연습한다. 이 모습을 보던 관객들은 자연스레 공연을 보고 있는 자신의 행동 역시 타자화 시켜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 시도는 무대가 끝나고 공연장을 나온 후에도 계속될지 모른다. 연습의 전시 이 연극은 관객과 배우가 함께하는 하나의 연습이다. 극장 밖을 나가 한 명의 인간, 혹은 '한 인간의 군락'으로서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연습 말이다. 배우는 “꿀벌을 세는 단위는 한 마리가 아닌 한 군락”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한 개인인가, 한 군락인가. 군락이라면 그 규모는 어디까지 넓혀질 수 있는가. 배우는 무대에서, 관객은 객석에서 공연이 주는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앞에 두고 함께 고민한다. 배우는 1막 초반에서 “이 공연에서는 연습을 ‘뿌비뽕’이라 칭하겠다”고 선언한다. ‘연습’은 어렵고 지겨운데, 지겨울 때는 환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공연에서 ‘꿀벌’과 ‘비(Bee)’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뿌비뽕’이 됐다. 인권 문제나 환경 문제, 개인의 가치관이나 윤리, 도덕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복잡한 시대에 ‘질문’은 어렵고 지겹다. 우리는 모두 이 시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질문을 깊이 생각할 시간도, 이 시대를 ‘연습’ 삼아 살아볼 수도 없다. 이에 연극은 연습의 장소로 무대를 선택했다. 무대는 공연 시간 동안 외부로부터 단절되며, 오롯이 독립된 하나의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 세계 안에서 배우와 관객은 잠시나마 세상을 살기 위한 연습을 해본다. 75분 동안 존재하는 이 세계의 이름은 ‘뿌비뽕’이다. 또한 배우는 이 무대 위에서 캐릭터로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 겸 창작자인 성수연은 배우로서, 창작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가진 생각과 질문을 관객 앞에 내놓는다. 성수연 배우는 공연 팸플릿에 실린 인터뷰에서 ‘척추동물이 아닌 존재, 인간과는 다른 구성 방식의 몸을 갖고 있는 존재를 연기함으로써 인간을 바라볼 수 있는 다른 관점을 가져보고 싶었다’며 꿀벌 연기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공연 중 죽은 꿀벌 사체를 무대에 가지고 나올까 고민했던 이야기를 하며, ‘고양이나 인간의 시체는 당연히 가지고 나오면 안 되는데, 꿀벌 사체로는 이런 고민을 했던 것 자체가 이상했다’라고도 털어놓는다. 이 공연이 ‘뿌비뽕’인 또 하나의 이유이다. 이날 공연을 관람했던 무대예술가 지망생 A씨(20)는 인간이 ‘인간 중심적’이지 않아야 할 이유에 대해 “지구에는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린 모두 거대한 생태계에 속해있다. 그런데 인간 중심적 사고는 인간이 유추하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로만 세상을 재단한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더욱 넓게 사고할 수 있을 것”이라 답했다. 이어 “실험 연극을 본 건 처음인데, 배우의 행동 지문을 관객에게 직접 언어로 전달하는 게 새로웠다. 배역이 아닌 배우 그 자체가 연극에 나온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 배우의 인생과 가치관이 연극에서 그대로 보인다”며 공연의 전체적인 소감을 밝혔다. 한편 연극 ‘B BE BEE’는 우란문화재단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예매 페이지에 ‘접근성 안내’ 영상을 게시해 두고 있다. 휠체어 이용 관객이 원활하게 공연장을 다닐 수 있도록 1층 로비에 ‘접근성 매니저’를 배치해 두었으며,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 및 수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공연 시작 전 주의사항과 배우의 대사, 배경음악에 대한 설명은 모두 자막이 동반 제공되며, 배우의 복장이나 무대의 풍경 같은 모습도 배우가 직접 대사를 통해 설명한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는 마음과 달리 몸은 에어컨을 틀게 되는 요즘, 인간으로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연극 ‘B BE BEE’를 추천한다. ‘B BE BEE’는 우란문화재단과 인터파크 홈페이지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나는 꿀벌을 바라본다. 꿀벌이 어떤 인간의 눈에 한순간 존재한다. 만남이 진동이 되어, 새로운 길! B! BE! BEE! 꿀벌이, 퇴장한다.”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탓인지 이날 세종대로 인근은 유독 쌀쌀했다. 빌딩 숲 사이로 시도 때도 없이 강풍이 몰아쳤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각자 자신의 옷깃을 세웠다. 수 차례 강풍이 불어닥칠 때마다 인파 사이로 수십 개의 깃발이 나풀거렸다. 깃발에는 각기 다른 학교의 마크와 이름이 적혀있었다. 깃발 아래로는 다시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이들은 각자 다른 학교 소속이었지만 그들의 손에는 모두 같은 피켓이 쥐어져 있었다. 지난 3월 26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정부의 교육 정책을 규탄하는 ‘전국예비교사 분노의 집회’가 개최됐다. 전국의 교육대학, 사범대학에서 교사를 꿈꾸는 대학생 1,500여 명이 이날 서울의 도로 한복판으로 모였다.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주관한 이번 집회에는 전국 19개 대학이 참여했다. 교사노조연맹,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시민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도 자리에 함께했다. 이들이 분노한 이유는 정부의 교육 정책 때문이었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교원 감축으로 인한 교육 현장의 충격을 완화하고, 보다 전문성을 갖춘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정원 외 기간제 교사 제도화 추진 △교육전문대학원 도입 △교육자유특구 신설을 골자로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정부는 해당 정책들이 향후 저출산에 따른 교육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취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래 교육을 책임질 교대생을 중심으로 반발의 움직임이 거세다. 이들은 정부의 정책이 실효성이 떨어질뿐더러 경쟁을 심화시키는 역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후 1시, 집결 시간이 되자 스태프들이 분주해졌다. 단상에 오른 사회자들이 인파를 진두지휘하자 앞에서부터 빼곡하게 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능숙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마지막 사람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질서를 지켰다. 행렬의 양 끝에는 각 학교의 깃발을 든 학생들이 나란히 정렬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자 시곗바늘이 예정보다 살짝 늦은 오후 1시 40분을 가리켰다. 단상 위의 사회자가 인사를 올리자 길게 뻗은 행렬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회자가 이날의 일정을 설명하고 안전을 당부하는 동안 점점 더 집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지나가는 시민들도 집회의 광경에 재촉하던 발길을 멈춰 세웠다. 사회자가 먼저 “교육 불평등 심화시키는 교육부 정책을 반대한다”며 구호를 외치자 참가자들은 “반대한다, 반대한다”라고 호응하며 피켓을 흔들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은 빌딩 숲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칠 때마다 그 목소리는 더욱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구호 연습이 끝나자 발언자들의 차례로 넘어갔다. 사회자는 이날 집회를 제안한 성예림 제11기 교대련 의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무대 위에 선 성예림 씨는 준비해 온 발언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오늘 교육 불평등의 고리를 끊기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초등학교 교실부터 대학까지, 경쟁이 심해지는 현실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 예비 교사들은 우리 손으로 직접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교육을 만들겠다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뒤를 이어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경북대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김상천씨였다. 전국의 사범대학을 대표하는 마음으로 단상 위에 선 그는 발언 내내 참가자들과 눈을 마주치며 거침없이 정부의 잘못을 꼬집었다. 단상에서 내려온 그를 찾아가자 그의 진솔한 생각을 더 자세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미래 교육을 책임질 예비 교원으로서 직무를 다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지금 교육부에서는 단순한 논리로 교원의 수를 줄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현재의 문제를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지금의 정부가 추진하는 바와 같이 단순히 교육 기관의 형식을 바꾸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정부가 교육지자체들과 협의를 함으로써 교육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발언과 발언 사이에는 대학생들이 준비한 흥겨운 공연이 펼쳐졌다. 경인교대 댄스 동아리 ‘플레어’가 준비한 무대는 집회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고, 광주교대 중운위가 준비한 풍물패 공연은 신명 나는 흥겨움을 더했다. 특히 이날 참석한 19개 학교를 상징하는 자켓을 입은 학생들의 합창 무대에선 여느 때보다도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토록 달아오른 분위기는 마치 학교 축제를 연상시켰다. 사회자들은 분위기가 꺼지지 않도록 곧바로 다음 순서로 이어갔다. 5명의 학생 대표가 단상 위에 올라 준비한 선포문을 낭독했다. “교육부는 예비 교사들의 요구에 응답하십시오. 교육부가 말하는 맞춤형 교육은 무엇입니까. 진단이 잘못됐으니 대책도 잘못됐습니다. 우리는 이번 공공 행동을 시작으로 정부에서 포기한 공교육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을 때까지 계속해서 행동해 나갈 것입니다” 선포문 낭독이 끝나자 무대에는 블록이 차곡차곡 쌓였다. 블록에는 ‘졸속 추진 교육전문대학원’, ‘기간제 교사 확대 정책’ 등 이들이 규탄하는 정부의 교육 정책이 적혀 있었다. 방금 전 선포문을 읽었던 학생 대표들이 블록의 뒤로 돌아가자 사회자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사회자와 참가자들이 함께 ‘제로’를 외침과 동시에 세워졌던 블록들은 세차게 무너졌다. 무너진 블록은 행렬의 끝까지 파도타기를 통해 전달되었다. 행렬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 블록은 거꾸로 뒤집어져 다시 행렬의 앞으로 옮겨졌다. 뒤집힌 블록을 단상 위에서 다시 쌓자 ‘교육전문대학원 전면 철회’, ‘학생이 중심되는 교육 환경’ 등의 문구가 나타났다. ‘깜짝 퍼포먼스’에 참가자들은 다시금 환호를 보냈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참가자들 뒤로 트럭 서너 대가 행진할 채비를 마쳤다. 소식을 전해 들은 사회자와 스태프들은 다시금 분주히 행진을 위한 대열을 준비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곧잘 대열을 갖추었다. ‘교육 불평등 심화시키는 교육부 정책 반대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선두에 내걸리자 사회자의 신호와 함께 행진이 시작됐다. 이날 행진은 세종대로에서 시작해 삼각지역까지 이어졌다. 3km가 넘는 거리를 내리 걸어야 함에도 학생들의 발걸음은 나들이를 떠난 듯 가벼웠다. “교육 불평등 심화 정책 반대한다”, “기간제 교사 정책 철회하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행진 내내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다. 이들의 행렬을 정신없이 쫓아가다 보니 숭례문이 보였다. 그러자 행렬의 가장 선두에 있던 차량이 멈춰 섰다. 멈춰진 차량 앞으로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테이프를 이용해 차로에 플래카드를 붙였다. 플래카드에는 ‘정원 외 기간제 제도가 교육부 성과다’, ‘교원양성체제 개편은 정부의 권한’, ‘교육이 상당한 경쟁시장 구도가 돼야’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금 차량이 움직이자 학생 행렬은 차로에 부착된 플래카드를 밟고 지나갔다. 아예 플래카드가 찢어지도록 발을 구르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밟고 지나간 플래카드는 넝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행진이 법적으로 신고된 지역은 삼각지역 부근까지였다. 서울역을 지나 삼각지역 가까이에 다다르자 수십 명의 경찰들이 바리케이트로 도로를 완전히 막아섰다. 대통령실 인근인 탓인지 경찰의 분위기가 한층 엄숙해 보였다 행진은 정확히 경찰의 바리케이드 앞까지 이어졌다.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자 선두 차량은 멈춰 섰다. 행렬도 덩달아 멈췄다. 전진을 멈춘 행렬 옆으로 ‘교육전문대학원’과 ‘정원 외 기간제 제도화’가 그려진 현수막이 펼쳐졌다. 그러자 학생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귀를 담은 불 모양 스티커를 현수막 위에 붙였다. 수백여 개의 불 스티커가 현수막에 빽빽하게 붙여졌다. 현수막의 글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화형’을 재치 있게 나타낸 것이었다. 행진을 마친 학생들은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오늘 하루 동안 수없이 외쳤던 구호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교육 불평등 심화시키는 교육부 정책 반대한다” “반대한다, 반대한다” 마무리 발언으로 서울교대에 재학 중인 최윤정 씨와 광주교대에 재학 중인 송재희 씨가 나섰다. 이들은 오늘 하루를 소회하면서 정부의 정책 시정을 촉구했다. “많은 학우분이 참석해 다 함께 우리의 요구안을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예비 교원들이 똑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또 한마음 한뜻으로 변화의 물결을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철회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의 폭풍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마무리 발언이 끝나자, 사회자가 공식적인 해산 선언을 함으로써 이날 집회는 종료되었다. 집회가 끝난 이후에도 많은 학생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날 집회에 참여했던 A씨는 하루를 곱씹으며 소감을 밝혔다. “다 함께 구호를 외치면서 삼각지역까지 행진했던 것이 무척 즐거웠어요. 거리가 먼 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저 혼자가 아니라 모두와 함께 걸으니까 힘이 났습니다. 저의 오랜 꿈인 교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이런 집회에 자주 참여하고 싶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전국교육대학생연합 김민아 집행위원장은 소감을 이야기하며 정부가 교육정책을 시정할 때까지 오늘의 공동 행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민아 집행위원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Q. 오늘 공동 행동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사실 공동 행동의 준비가 급하게 이뤄져 행동 직전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금전적 문제도 있어 후원을 받고자 홍보를 올렸는데 많은 학우분이 호응해 줘 다행히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오늘 공동 행동 현장에서도 볼 수 있었듯 많은 학우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평화적인 해결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 주최를 결정한 입장에서 이런 분위기가 큰 힘이 되었다. 잘못된 정책들을 바로잡을 때까지 이런 행동을 이어 나가고 싶다. Q. 정부가 발표한 여러 정책이 교원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큰 반발심을 준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부분에서 가장 반발이 심했는지. A. 어느 한 정책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다. 정부와 교육부의 전반적인 교육 정책에 대한 입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공동 행동도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추진되었다. 향후 정부의 교원 수급 계획이 발표되는데, 교원 감축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힘을 합쳐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이렇게 공동 행동에 나서게 됐다. Q. 향후 어떻게 학교 간 소통을 이어갈 예정인지. A.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간 유기적인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향후에도 다양한 제안을 드릴 예정이다. 또 지금까지 온라인으로만 연락을 취했다면 이제는 직접 찾아뵙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 중에 있다. 향후 함께 적극적으로 활동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4월 24일 향후 3년 간의 교원 수급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된 계획안에 따르면 2024년부터 공립 교원의 신규 채용은 현재 규모(초등 3,561명, 중등 4,898명)에서 최대 초등 600여 명, 중등 800여 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감소 수준을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해 2027년까지 초등 2,600명 내외, 중등 3,500명 내외까지 신규 채용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올해 시범적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던 교육전문대학원은 여전히 답보하고 있다. 교육부는 교육전문대학원에 대한 교육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시범 운영 계획을 전면 연기하고 의견 수렴에 나섰다. 3.26 공동행동을 주최했던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은 교원 수급 계획의 철회를 요구하며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6월 19일 오후 4시 36분, 부산 백산초등학교(이하 백산초) 후문 근처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트럭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백산초에서 근무하는 20대 사서교사 A씨로 퇴근하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사고 일주일 뒤인 6월 26일, A씨의 동생이자 성공회대 졸업생인 B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A씨의 사고는 퇴근 시간으로부터 6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학교 후문 근처 횡단보도에서 일어났다. B씨는 그럼에도 관계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사고 장소에는 보행자 안전을 위한 조치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인터뷰는 6월 27일 진행되었습니다. 백산초 후문 스쿨존에서 교사의 교통사고가 발생했어요. 사고 이후 학교는 어떻게 대응했나요? 언니가 19일 오후 4시 36분에 사고를 당했어요. 다음날 학교 측에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얼마나 위독한 상황인지 알렸어요. 사고가 일어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을 때 교감의 전화를 받았어요. 언니가 8월 29일까지 입원한다는 내용의 서류를 보내 달라고 했어요. 사서 교사 자리에 공백이 생겼으니 대체할 인력을 구하겠다는 게 이유였어요. 그때 의사는 언니가 하루를 넘길 수 없을 거라 판명했고 이를 학교 측에 얘기했는데요. 학교 스쿨존에서 교사가 사고를 당했으면 사고 경위와 책임에 대한 설명이 먼저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퇴근하고 6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사고가 났어요. 사람 목숨보다 학교 실무를 우선시하며 유가족이 될 수도 있는 피해 가족에게 서류를 요구한 게 굉장히 반윤리적이라고 느꼈어요. 교통사고 발생 이후 경찰의 대처는 어땠나요? 어머니가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으셨어요. 사건을 담당한 조사관은 처음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고, 우리 가족은 언니가 정확히 어느 위치에서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모르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 사고 위치가 신호등이 있는 스쿨존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게 됐어요. 경찰은 도로 교통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언니가 사고를 당한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2017년 비슷한 지점에서 무단횡단하던 노인분의 사고가 발생하고 4년 뒤 2021년에 생겼어요. 그렇지만 시범 운영 두 달 만에 차량 정체 민원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신호등을 껐어요. 차량 신호를 황색 점멸등으로 바꿨고요. 황색 점멸등이랑 보행자 신호등은 동시에 운영될 수 없잖아요. 경찰은 차량의 원활한 운행을 위해 점멸등을 켜고 신호등을 껐어요. 보행자의 안전을 우선시하지 않는 선택을 내린 거예요. 결국 2023년 언니의 사고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경찰이 그간 보행자 안전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해당 스쿨존에 또 다른 안전 문제가 있었나요? 신호등을 포함해 백산초 스쿨존의 안전에 대한 네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어요. 우선 말씀드린 것처럼 보행자 신호등이 꺼져 있었다는 거예요. 교통 체증을 이유로 차량을 사람 목숨보다 우선시해서요. 두 번째로는 스쿨존인데도 과속 단속 카메라가 없어요. 1) 세 번째로 과속 방지턱이 횡단보도로부터 10m가량 떨어진 곳에 있어요. 그 높이도 3cm밖에 되지 않아서 3cm 높이의 과속 방지턱이 무슨 감속 효과가 있을까 싶고요. 마지막으로 건널목이 교차로에 바짝 붙어 있어요. 그 도로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내려오면서 좌회전할 수 있는 구조예요. 좁고 운전자가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워서 좌회전 안내선도 그려져 있는 도로거든요. 그런데 좌회전 안내선이 끝나자마자, 즉 차량이 좌회전하자마자 맞닥뜨리는 지점에 횡단보도가 있어요. 도로 상황을 생각했을 때 과연 그 위치에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것이 옳았는지 의문이 들어요. 1) 2019년 12월 일명 '민식이법'(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며 개정된 도로교통법은 아래와 같이 어린이 보호 구역 내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지방경찰청장, 경찰서장 또는 시장 등은 제3항을 위반하는 행위 등의 단속을 위하여 어론이 보호구역의 도로 중에서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곳에 우선적으로 제4조의 2에 따른 무인 교통단속용 장비를 설치하여야 한다. <신설 2019.12.24>" 사고를 낸 운전자는 제한 속도 시속 30km 등 스쿨존 교통법규를 위반했나요? 아직 조사 중이라 속도가 어땠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어요. 다만 경찰이랑 해당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인했어요. 언니는 횡단보도 중간 지점까지 나와 있었는데 트럭이 다른 곳으로 피하는 것 없이 정면으로 충돌했어요. 차에서는 노랫소리가 나오고 있었고요. 여러 정황상 운전자가 한눈을 팔았다고 보고 있어요. 조사관 또한 그 부분에 무게를 싣고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운전자는 보행자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건가요? 조사관은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보다 ‘부주의했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사고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횡단보도 신호등이 꺼져 있었던 게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파악하고 있어요. 사고가 났음에도 아이들이 계속 신호등이 꺼진 위험한 횡단보도에서 등하교하고 있다는 게 시급한 문제고요. 그리고 이런 문제를 만든 구조적 원인으로 교통 행정과 교육 행정 두 가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고에는 학교 측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봐요. 사고 다음 날 책임을 물었을 때 학교 측은 신호등에 대한 공문을 보내고 속도계도 설치하려 노력했다고 답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보니까 횡단보도 신호등이 꺼져 있잖아요. 학교 측에 ‘이렇게 위험한 횡단보도를 아이들에게 건너게 할 거냐. 그간 횡단보도 신호등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했는지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대면해 요구하자 그제야 신호등에 관한 공문을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알고 보니 사고 다음 날 제가 학교에 책임을 묻고 난 후 공문을 올렸더라고요. 학교 측이 사고에 대해 정말 책임지고자 했다면, 사고가 났다는 내용과 경위를 포함했어야 하는데 ‘여기 위험하니까 신호등 만들어 달라’고 두 줄 쓴 게 공문의 내용이었어요. 이게 학교가 신호등과 관련해 노력한 전부였어요. 언니의 사고 이후에요. 시시비비를 따지는 게 어떻게 보면 무의미하기도 해요. 관리자는 시장이고, 지자체가 책임을 가지고, 또 지자체가 그렇게 운영되도록 한 구조가 있겠고요. 원인을 쫓고자 하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우선 신호등을 포함하여 스쿨존 관리를 미흡하게 했던 ‘경찰 행정’, 어린이 보호구역의 보행자 안전을 방치했던 ‘교육 행정’, 그리고 사고가 난 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반윤리적인 실무 절차를 진행한 ‘학교 측’에 집중하려 해요. 학교 측은 그동안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나요? 횡단보도 신호등 외에 속도계, 스쿨존 CCTV 같은 부분에는 노력을 기울였다며 자료를 공유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일부러 자료를 받지 않았어요. 어차피 언니 사고와는 관련이 없으니까요. 신호등은 꺼져 있었고 이 부분을 학교 측이 방관하고 있던 게 맞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사고가 났잖아요. 학교 측이 얼마나 노력했든 간에 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스쿨존 안전에 관한 관리 감독이 부실했다는 걸 방증하는 거예요. 신호등이 꺼져 있었던 게 언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자 핵심인데 모두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으니까요. A씨가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였음에도 학교 측은 미흡한 대처를 보이고 있어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학교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는 처음 책임을 물었을 때부터 ‘안전을 위해 행정 절차를 밟았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횡단보도 신호등은 꺼져 있었고 아이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등하교하는데도 행정적 절차 이상의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거죠. 사고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뉴스 댓글로 제보를 받았어요. 학생들이 언니에게 쓴 편지를 자발적으로 도서관에 붙였는데 이를 교장이 떼고 학생들을 혼냈다는 내용이었어요. 고민하다 교장에게 물었더니 그런 적 없다며 학생들이 편지를 붙였는지도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연히 거짓 제보인 줄 알았어요. 언니 동료 교사분들과 만났을 때 학생들이 도서관에 편지를 붙인 게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교장이 그 뒤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또 학교 내부에서 언니 사고와 관련된 일이 공유되지 않고 있다고 했어요. 학교는 취재 요청에 하나도 협조하지 않고 있고 사진 기자가 현장을 찍으면 내쫓기도 한다더라고요. 교장을 비롯한 학교 측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니 과연 책임지려고 하는 건지 의문이 들어요. 6월 27일 이루어진 합동 점검은 어떤 자리였나요? 학교 등 교육 행정이랑 경찰 측이 사고 지점에서 합동으로 점검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사고는 19일에 일어났어요. 19일부터 27일에 이르기까지 그 위험한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은 계속 등하교하고 있던 거예요. 이 조치가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불만이 있어요. 합동 점검을 진행한 게 이 사건에 대해 정당하게 책임을 지려는 건지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사고 이후 6월 27일까지 횡단보도 신호등에 대한 안전조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학생들과 교직원이 그 길을 이용한 건가요? 네 계속 이용하고 있었어요. 학교가 사건 경위에 대해서 교사들한테도 정확하게 알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저희도 일 처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기사를 통해서 알았어요. 안전조치에 대해서는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온 후 학교가 형식적인 조사를 했다는 것까지만 알아요. 그간 얼마나 위험한 상황들이 있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저희는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쿨존에서 성인이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 ‘민식이법’에 의거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성인에게는 ‘민식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요. 2) 현재 법률은 사고가 일어난 후 피해자가 어린이일 경우에만 그 책임을 물 수 있도록 한정하고 있어요.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법률을 적용하고 있지 않아요. 우리 가족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그렇지만 언니의 사고만을 놓고 봤을 때는 민식이법을 적용할 수 없는 게 너무 억울해요. 가해자가 형을 많이 받아 봤자 벌금 2천만 원이거든요. 언니의 경우에는 학교에 재직하던 사서 교사고 퇴근길이었으니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 아무것도 없어요. 스쿨존이라서 법적으로 가중되는 것도 없고,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 제한 속도인 30km를 넘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만 문제 삼을 수 있어요. 언니가 백산초 교사였기 때문에 이 일이 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언니가 힘든 상황에 이르긴 했지만, 교사라는 위치가 없었고 그곳을 지나다니는 일반 성인이었다면 이렇게 화제가 되진 않았겠죠. 2)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5조 13항은 법의 적용 대상을 '어린이(13세 미만인 사람)'에 한정하고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 문제는 몇 년째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주제잖아요. 그런데 계속 사고가 발생하고,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고를 당한 성인에게 적용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은 행정에 큰 공백이 있다는 방증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사고가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잖아요. 스쿨존이 생긴 것도, 아이들이 가방에 ‘30’이 적힌 형광 안전 커버를 씌우고 다니는 것도 그간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해요. 언니 사고가 너무 억울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가족은 언니가 아이들을 지켜주려고 그랬나 보다 생각하며 위로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만큼 이 문제가 많이 알려지고 시정되면 좋겠어요. 언니분과 관련해서 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우리 언니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언니는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했어요. 그리고 아이들도 언니를 너무 사랑했어요. 그런 교사인 언니와 아이들이 언니의 사고로 이별하게 되는 거잖아요. 이 상황을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그리고 남은 교육자들은 어떻게 교육할지 궁금해요. 며칠에 한 번씩 언니를 면회하러 가는데요. 언니가 건강했던 모습들을 보다가 언니가 그런 모습으로 누워 있는 걸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돼요.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억울한 거 없이, 마음에 걸리는 거 없이 언니를 보내주고 싶은 게 우리 가족 심정이에요. 사실 언니 사고에 대해 동정하기 쉽잖아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던 어린 교사가 퇴근길에 사고를 당했다는 대목이 안타까워 다른 사고에 비해 알려졌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관심은 금세 사라질 거고 아픔과 슬픔은 가족들한테만 남을 가능성이 크죠. 그래서 잘못됐다고 지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언니가 죽게 생겼는데 남길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다가요. 왜냐하면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니까요. 운전자 말고도 너무 많은 문제가 중첩되어 있고, 책임이 있는 이들의 방임으로 사고가 일어난 거잖아요. 그리고 비교과 교사인 사서 교사는 교과 교사에 비해 교육계 내에서 약자예요. 그런 지점을 언니가 일기로 기록해 줘서 이것도 알릴 수 있으면 알리고 싶어요. 언니의 삶과 바람이 헛되지 않게, 언니가 고통받았던 것들이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게요. 이렇게 더 넓은 관점으로 언니의 사고를 해명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막상 언론에 알려지니까 안 좋은 댓글이 많이 달려서 속이 많이 상하고, 우리가 의도한 만큼 세상에 얼마나 정동을 일으킬지는 모르는 거지만요. 7월 2일에 사고 현장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은 무엇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7월 2일 기자회견에서는 첫 번째로 스쿨존 안전에 대해, 두 번째로 비교과 교사들의 교육, 노동 환경 개선에 관해 이야기하려 해요. 우리 가족이 주축이 되기보다는 교육계 전반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에요. 언니 사고와 관련해서 있었던 행정 절차라든지 아니면 언니가 일기에 썼던 부당한 내용들에 대해서요. 그래서 교사, 교수, 도서관 관계자 대상으로 연명을 받고 있어요. 이 내용을 읽을 성공회대 동문이 함께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싸움이나 투쟁에서는 내 이야기를 알아줄 사람들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많지 않다는 걸 졸업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뼈저리게 느껴요. 반대쪽에서 이야기하는 학우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제가 회대에서 보고 배우고 듣고 나눈 게 있으니까 많은 분이 공감해 주실 거라 생각해요. 남 일 같겠지만 동문 친구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많이 관심 가져 주시고 움직임에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개인적인 마음을 들려주셔도 괜찮습니다. 지금 제 마음이 뭔지 모르겠어요. 믿을 수 없다가도 언니가 누워 있는 걸 보면 이게 나한테도 일어나는 일이구나 생각하게 돼요. 세월호 참사나 10.29 이태원 참사처럼 참사들은 계속 이어져 왔잖아요. 그때 나름 공감한다고, 노력한다고 하긴 했는데 결국에는 남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체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결국에는 큰 참사가 일어났던 그 이유들 때문에 우리 언니가 죽게 생긴 거예요.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불감했는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반성이 많이 돼요. 또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저에게도 그렇고 이 기사를 볼 동문들에게도 그렇고 이런 일이 다시는, 겪어보니 너무 끔찍하니까 정말 다시는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공감이 가신다면 동참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6월 27일) 합동점검을 진행했다면 이제 꺼져 있던 신호등은 켜졌나요? 합동 점검 전까지 ‘합동 점검을 진행할 거고 횡단보도 신호등을 켤지 고려해 보겠다’는 내용이 저희가 아는 전부였어요. 신호등을 켜겠다는 게 아니라 ‘고려해 보겠다’는 게요. 우리 가족은 언니가 사고를 당한 이상 교통 행정을 바꾸고 스쿨존의 안전을 개선하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결과가 언제 나올지, 어떻게 될지는 몰라요. 그러니까 지금도 신호등은 켜져 있지 않아요. 이후 7월 1일 A씨가 건넌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사라졌다. 7월 3일 B씨로부터 합동 점검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차량용 황색 점멸등 운영을 계속하기로 했고 횡단보도 신호등은 제거했다는 내용이었다. B씨는 “합동 점검 당시 학교 측, 경찰 측, 지자체 관계자 중 신호등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아무런 책임 없이 학생들의 안전마저 뒷전으로 미루는 무감한 행정을 비판했다. 취재=유지은 기자(ujieun0231@gmail.com), 황혜영 기자(hyeng925@gmail.com) 글=유지은 기자
지난 26일 국민대학교 본부관 앞 분수대에서 학교 법인이 진행 중인 제13대 총장 선임 과정을 규탄하는 집회가 총학생회 주도로 열렸다. 국민대학교 제55대 총학생회 ‘아워’는 지난 26일 오전 학교 법인의 불투명한 총장 선임 과정을 규탄하며 3시간 가량 집회를 이어갔다. 이날 집회에는 총학생회장 양은아씨와 부총학생회장 이승준씨를 비롯해 40여 명의 학생자치기구 회장단 및 학내 구성원이 참여했다. 총학생회 ‘아워’는 학교 법인이 △폐쇄적인 총장 선임 규정을 개정할 것 △총장 선임 과정의 모든 정보를 공개할 것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에 학생 의석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또 최근 학교 법인에 총학생회 입장문을 송달하면서 발생했던 소통 문제에 대해 법인이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대 총학생회장 양은아씨는 규탄 발언에서 “총학생회는 학내 구성원에게 정보 공개를 하지 않는 이번 총장 선거에 대해 학교 법인에 큰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법인 국민학원은 구성원 간의 소통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한 차례라도 보였는가”라며 학교 법인을 비판했다. 총학생회 교육정책국장 문재희씨는 “법인의 일방적인 행정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바로 학생”이라며 “학교 법인도 총장 선임 규정의 민주화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30여 분의 규탄 발언을 마친 집회 구성원들은 본부관 3층 이사장실 앞으로 자리를 이동해 침묵시위를 이어갔다. 2시간가량 이어진 침묵시위는 임홍재 총장과 총학생회가 상호 간 약속을 맺으며 12시 즈음에 종료됐다. 총학생회 ‘아워’는 “총장과의 면담에서 우리의 서약서와 요구를 반드시 법인에게 전달하겠다는 총장과의 약속 후 서약서를 전달하고 시위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한편 국민대학교는 지난 4월 28일 제13대 총장 선임 공고를 게시했다. 국민대의 총장 선출은 법인 이사, 외부 인사, 교수, 동문, 직원 등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가 진행한다. 해당 위원회에서 총장 후보자 여러 명을 추천하면 법인 이사장이 그중 한 명을 총장으로 선출한다. 지난 2015년 제정된 해당 규정은 당시에도 ‘깜깜이 선출’로 학내 구성원들에게 우려를 샀다. 2019년에는 총학생회 ‘바로’가 총장 직선제를 주장하면서 많은 학내 구성원의 호응을 받았다. 총학생회 ‘바로’는 학생서명운동과 비상학생총회를 소집하며 법인이 총장 직선제를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이준배씨는 본부관 앞에서 열흘이 넘는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총학생회 ‘아워’는 “2019년에 학교법인인 국민학원의 상임 이사로부터 차기 총장 선임 시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에 학생 의석을 1석 보장한다는 구두 합의를 맺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구두 합의가 이사회를 통해 총장 선임 과정에는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대 법인 관계자는 지난 5일 학내 언론을 통해 “당시 구두 합의를 했던 상임 이사가 현재 법인에 없다. 당시 상황과 정확한 합의 내용을 아는 법인 직원이 없기 때문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답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총장 선임 과정의 개정을 촉구하며 수 차례 결의문과 요구문을 공고했던 총학생회 ‘아워’는 “이번 집회에서처럼 학생들의 권리를 위해 향후에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한국외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내 글로벌캠퍼스 자유 게시판에는 셔틀버스에서 에티켓이 지켜지지 않는 이른바 ‘노(NO) 에티켓’ 문제를 다룬 글이 빈번하게 올라오고 있다. 지난 4월 올라온 ‘의자 젖힘’과 관련해 ‘노(NO) 에티켓’을 지적한 글은 21개의 공감 수와 8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중 한 노(NO) 에티켓 관련 글에는 ‘그런 건 말 안해도 안하는 것이 예의다’ 혹은 ‘어휴 진짜 혼내줘야 하는데’와 같이 불만을 드러내는 반응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의자를 젖히지 말아달라는 글에서 익명의 한 학우는 ‘나도 겪었는데 그 사람은 더 뒤로 젖혀서 나 무릎에 멍들음'과 같이 피해 사례에 공감하는 반응도 보였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지난 23년 1학기에만 총 23개의 노(NO) 에티켓 관련 게시물이 업로드됐다. 이 중 노 에티켓 사례로 가장 많이 지적된 유형은 의자 관련 문제(의자 젖힘, 다리 벌림, 부적절한 짐 보관 사례)로 총 8개로 나타났다. 이어 과도하게 크고 오랫동안 계속되는 대화가 불만이라는 경우가 두 번째로 많았다. 뒤이어 새치기나 무임승차, 강한 향수나 담배 냄새 등도 노 에티켓 사례로 제기됐다. 실제 학우들도 버스를 이용하면서 노 에티켓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A 학우는 버스 내에서 큰 목소리로 기사와 학생들에게 방해가 된 경험을 전했다. 그는 지난달 10일 버스 내에서 학생들이 고성으로 대화한 상황을 소개하며 “기사님이 직접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기 초에는 (버스 내에서) 통화를 심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며 “너무 과도한 대화와 통화는 기사님의 운전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안전을 위해서라도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B 학우 역시 “큰 목소리의 전화통화로 인해 피해가 생각보다 많다”며 답답함을 전했다. 또한 ‘승객이 많을때 옆자리에 짐을 놓아서 앉아야 할 사람이 눈치를 보고, 빠르게 승객들이 앉지 못하는 경우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C 학우는 “셔틀버스에서 시끄럽게 떠든 경우가 많다”며 심지어 “새치기를 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학우들은 '노(NO) 에티켓' 문제 해결을 위해 승객과 버스 운영 주체 모두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B학우는 옆자리에 짐을 놓거나 혼자 두자리를 차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뒷자리부터 앉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마치 학교에서 진행한 '성희롱 등 폭력 예방 교육'처럼 학교에서 버스 에티켓 관련 교육을 온, 오프라인에서 진행해 (승객들이) 알아 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학우는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D학우는 경기도 G BUS TV에 방영되는 '두유노우 젠틀버스' 영상을 예시로 들며 "TV가 설피된 학교 셔틀버스에라도 모션그래픽 에니메이션 영상을 만들어 송출한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앞서 경기도는 2014년부터 관내 버스에 설치된 'G BUS TV'에 '두유노우 젠틀버스' 영상을 활용해 승객들에게 버스 이용시 지켜야할 에티켓을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한편 약 5월 말부터 TV가 설치된 일부 통학 셔틀에서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큰소리의 전화 통화나 의자를 뒤로 젖히는 행위와 같은 버스 에티켓 관련 주의 영상을 재생하고 있다. 박찬빈 기자(nova_aetas@naver.com)
최근 한국영상대학교 학우들과 인근 주민들을 퇴비 악취로 인해 불편을 겪고있다. 세종 장군면 금암리는 대학생들과 주민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는 형태다. 주민들은 농사를 짓기 때문에 봄에서 초여름 넘어가는 무렵에 비료를 가져다 놓는다. 이에 따라 최근 5월~6월 사이에 세종시 금암리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큰 고충을 겪었다. 비료의 냄새가 금암리 전역에 퍼져 심한 악취가 나오게 된 것이다. 심지어 비료가 위치한 지점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들은 환기를 위해 잠깐 창문을 열면 악취가 집안에 배어 간단한 환기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됐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거름 냄새 장난 아니다’ ‘거름 냄새가 너무 진동한다’ 등 많은 불만을 표출하였다. 일부 학우들은 전화 민원과 시청 민원으로 작성을 진행했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사태가 해결되지 않자, 한국영상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 조민국 전 학회장이 직접, 5월 15일(월)에 단체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 ‘금암리 퇴비 악취 관련 설문조사’라는 글을 올려 정보와 의견을 취합하여 민원을 제기했다. 한 달 뒤 세종시 민원팀에서 퇴비 악취 민원 제기 관련 답변을 받았다. 회신문의 내용은 “6월 14일(수)~ 15 일(목)에 걸쳐 농경지에 살포된 퇴비를 수거하도록 조치하였다”라고 답했다. 답변 내용과 달리, 수거를 완료하고 나서도 비료 냄새는 없어지지 않았다. 이후에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냄새가 없어졌다. 오랜 기간 동안 금암리 주민들을 괴롭혀 온 비료 냄새, 이번 사건을 통해 농민들이 생계가 달린 일이라도 인근 주민들까지 배려해 주는 자세를 가지고 같은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영상대학교는 기획팀을 통해 학칙 개정에 대한 의견수렴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적인 학칙 개정에 대한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의견수렴은 한국영상대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상시로 학칙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필요성을 반영한 것이다.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반영하여 학칙을 개정함으로써 대학의 운영과 교육 환경을 보다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공지에 따르면, 학칙 개정안의 학칙 전문과 신·구조문 대비표가 공지되었으며 학칙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기간은 2023년 6월 16일(금)부터 7월 7일(금)까지이다. 의견서는 제출기한인 7월 10일 오후 5시까지 제출 가능하며, 의견서 제출 방법은 공지문의 함께 첨부된 양식을 작성하여 제출하면 된다. 한국영상대학교 기획팀에서는 이번 학칙 개정에 대한 의견수렴에 대한 기타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담당자에게 문의하도록 안내했다. 한국영상대학교는 학칙 개정에 대한 의견수렴을 통해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학의 학칙을 보다 현대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사이 출생자)를 중심으로 ‘N잡러’ 열풍이 불고 있다. ‘N잡러’란 생계유지를 위한 본업 외에도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특히, MZ세대는 ‘평생 직장’이라는 이전 세대에게 존재했던 개념에서 벗어나 취업 이후에도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부업이나 취미활동을 즐기면서 퇴근 후 시간이나 주말을 보낸다. 법인보험대리점(GA) 리치앤코가 모바일 리서치 기관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수도권 거주 20~30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MZ세대 응답자 중 85%가 N잡에 관심을 보였고, 5명 중 1명은 실제 N잡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N잡러가 아닌 이들이 선호하는 N잡으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에서 활동하는 소셜 크리에이터(46%)가 가장 많았다. 이어 온오프라인 판매(41%), 재능마켓(36%) 등이 뒤를 이었다. 왜 MZ세대들이 N잡에 뛰어 들려고 할까? 그 이유는 다양하다. 고물가, 취업난, 경기 불황이 겹치면서 경기침체 장기화가 이어지자,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자)’의 절반이 생계비를 걱정하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MZ세대 3명 중 1명은 돈이 부족해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져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딜로이트 그룹이 지난 5월 18일 발표한 ‘딜로이트 2023 글로벌 MZ세대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한국 MZ세대 501명 가운데 절반 가량이 ‘생계비 걱정’을 자신의 최대 관심사로 꼽았다. 이는 딜로이트가 전 세계 44개국의 MZ세대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에서 한국 응답자만 추려낸 결과다. 실제 송파구에 거주하는 22세 N잡러는 “고학년이 되면서 개인 지출 뿐만 아니라 생활 비용까지 혼자 부담하게 되어 더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게 되었다”면서 같은 시간을 일하고 조금이라도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한 번에 여러 직종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꼭 경제적 이유 하나로만 N잡러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직장 월급 외 소득 창출이나 자기 개발, 자아실현을 위해 퇴근 후나 주말에 부업을 뛰는 N잡러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곳에서 일하는 투잡족과는 달리 N잡러는 퇴근 후 1인 크리에이터 활동을 위해 수십만원을 들여 유튜브용 방송 장비를 장만하는 등 취미로 시작한 활동을 전문분야로 확산시킨다. 서울대 소비트렌드센터 관계자는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진 N잡러라는 새로운 부류가 등장했다”며 “N잡러는 생존형 업무를 병행하는 투잡족과 달리 본업에서 채워지지 않는 자아실현을 위해 관심 있는 분야에 도전하는 경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장유민 기자(kell1786@naver.com)
역대 최고 수준의 재정 지원이 이뤄지는 ‘글로컬 대학’ 사업의 예비지정 평가 결과가 지난 20일 발표됐다. ‘대학 구조조정의 마지막 동아줄’이라고 평가받는 이번 글로컬 대학 사업에는 총 108개교가 참여해 그중 15개교가 이번 예비지정 평가에서 선정됐다. 해당 15개교는 추후 본지정 평가를 거쳐 5개교가 탈락한 10개교만이 사업 대상으로 최종 선정될 계획이다. 글로컬 대학 사업은 윤석열 정부에서 진행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이다. 올해 사업에 최종 선정된 10개 대학은 앞으로 5년 동안 약 천억 원에 달하는 재정을 지원받는다. 학령 인구 감소로 지방 소재 대학의 어려움이 부각되는 가운데 글로컬 대학 사업은 지방 대학의 ‘마지막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글로컬 대학 사업에서는 10개 내외 대학을 최종 선정하지만, 전국 108개 대학이 사업 신청을 위한 기획서를 제출하면서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글로컬 대학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선 1단계 예비지정 평가와 2단계 본지정 평가를 모두 거쳐야 한다. 교육부와 글로컬대학위원회가 각 대학이 제출한 혁신기획서를 평가한 결과 이번 예비지정 평가에서는 △강원대·강릉원주대 △경상국립대 △연세대 미래캠퍼스(강원 원주 소재) △부산대·부산교대 △순천대 △순천향대 △안동대·경북도립대 △울산대 △인제대 △전남대 △전북대 △충북대·한국교통대 △포항공과대 △한동대 △한림대가 선정됐다. 이번 예비지정 평가에 선정된 대학은 대부분 4년제 종합대학이었으며 전문대학은 안동대·경북도립대 연합이 유일했다. 설립 유형별로는 국립대가 8곳, 사립대가 7곳(연합 포함)이었다. 지역별로는 영남권이 7곳으로 가장 많았고, 강원권과 호남권이 각각 3곳, 충청권이 2곳으로 뒤를 이었다. 교육부는 △지역적 특성 △혁신 계획 △시스템 구축 및 운영 계획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각 대학이 제출한 혁신기획서를 검토했고 이를 관련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공정하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7개교가 지원한 대전·충남·세종권에서는 순천향대만이 유일하게 선정됐고, 6개교가 지원한 강원권에서는 절반인 3개교가 선정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사업 선정 과정에 있어 지역 안배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혁신성 위주로 대학을 선정했는데, 우연히 지방거점국립대들의 통합·혁신 모델이 좋았기 때문에 다소 쏠림 현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예비 지정에 선정된 15개교는 오는 9월까지 지방자치단체, 지역 산업체 등과 함께 기존에 제출한 혁신기획서에 담긴 과제를 구체화하는 실행계획서를 수립해 제출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본지정 평가를 거쳐 10월 중에 최종 글로컬 대학이 지정된다. 한편 이번 예비 지정 평가 결과에 이의가 있는 대학은 6월 30일까지 이의 신청을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검토 결과는 7월 중 확정될 예정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최종 본지정까지 공정하고 엄밀한 평가과정을 거칠 계획”이라며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지 못하더라도 제안해 주신 변화의 씨앗들이 현장에서 착근되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부가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여당 국민의힘이 각 대학마다 다른 ‘학점 백분위 환산 점수’의 제도 개선에 나선다. 지난 22일 국민의힘은 당내 청년정책 총괄 기구 ‘청년정책네트워크’ 특별위원회가 최근 대학마다 다른 학부 성적 평균(GPA) 환산식을 개선하기 위해서 교육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실무자들과 관련 문제 및 해결책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GPA는 ‘Grand Point Average’의 줄임말로, 학점을 백분위로 환산했을 때 변환 점수를 의미한다. GPA를 이용하면 학점 체계가 서로 다른 학교 간에도 손쉽게 학점을 비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점 4.3이 만점(백분위 100점)인 학교에서 3.7 학점은 백분위로 환산하면 94점이지만, 학점 4.5가 만점인 학교에서는 3.7 학점은 92점에 불과하다. 따라서 서로 같은 학점을 받았더라도 학교의 학점 체계에 따라 GPA로 환산한 백분위 점수가 달라질 수 있다. GPA 점수는 취업 및 대학원 입시, 또는 로스쿨 진학 등에 있어 평가 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타인과 동일한 학점을 받았더라도 학교의 학점 체계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세한 점수 차이가 당락을 가르는 로스쿨 진학의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교마다 학업성적을 처리하는 규정이 제각기 달라 이러한 GPA 환산식 개정을 두고 다수의 학교가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연세대와 경희대가 GPA 환산식을 개정하기로 합의하면서 대학가에는 ‘GPA 환산식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올해 초에는 서울대와 성균관대가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GPA 환산식 개정을 핵심 공약으로 삼아 연내 개정을 목표로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한 대학에서 GPA 환산식을 기존보다 유리하게 개정하면 타 대학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지기 때문에 GPA 체계 자체의 공신력이 하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특별위원회는 대학별 GPA 환산 점수로 인한 공정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부 차원에서 ‘GPA 통합 환산식’을 마련하는 방안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 알리미’를 통해 대학별 GPA 환산식을 공개하는 방안 △백분위 환산 점수를 활용하는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GPA 환산 기준을 수립하도록 권고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GPA 환산식 개정 문제에 개입을 신중히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조에 따르면 ‘교육과정의 운영, 교과의 이수단위 및 성적의 관리’는 학교장의 권한인 학칙에 해당돼 교육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이뤄지기 어렵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GPA 환산 점수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하고 해당 문제를 직접 손보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이르면 다음주 교육부와 당정 협의회를 주재하고 제안된 방안들을 검토할 예정이다.
혁명이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과 변화를 의미한다. 존재 자체가 혁명인 연극 ‘혁명의 춤’이 원로 연출가 김우옥을 만나 23년 만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정기 공연으로 올라온다. ‘혁명의 춤’은 국내에 몇 없는 구조주의 연극의 대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우옥 연출가는 1983년을 시작으로 2000년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이 작품을 공연했다. 이번 한예종 정기 공연이 다섯 번째 무대다. 안무가 최수진의 지도를 받은 20명의 연기과 학생이 배우를 맡았다. 더불어 △극작과 △무대미술과 △연출과 등으로 구성된 연극원 학생 약 20명이 스텝으로 참여한다. 공연은 다음 달 1~3일, 한예종 연극원 실험무대에서 막을 올린다. 줄거리도, 등장인물도, 무대 조명도 없는 연극 구조주의 연극은 실험극의 한 종류다.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가던 기성 연극에서 벗어나, 오롯이 연극의 구조와 원리에만 집중한다. 하나의 개념을 해체했다가 다시 합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구조주의 연극의 특징이자 매력 요소이다. ‘혁명의 춤’의 원작은 ‘전위연극의 권위자’라고 불리는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 교수의 작품이다. 커비 교수는 연극의 본질적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작품의 모든 문학적 요소를 제거했다. 그렇게 8개의 신(scene)이 만들어졌다. 등장인물은 이름 없이 숫자로만 39까지 나열돼 있으며, 조명이라곤 배우가 들고나오는 플래시 불빛이 전부다. “준비됐어?” 하나의 요소로 연결되는 내용 연극을 이루는 대표적 구조는 △언어 △동작 △음향이다. 8개의 장면 내내 △기다려. △들려? △그들이야. △그들 거야. △준비됐어? △누가 오고 있어. 등의 짤막한 대사들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반복된다. 배우들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기다려”를 외치다가도, 두려움에 사로잡힌 듯 조그맣게 “그들 거야”라고 속삭이기도 한다. 극에서 ‘그들’은 장면마다 바뀐다. 그것은 혁명을 도모하는 이들을 가리키기도, 혁명의 대상이 되는 지배층이나 감시 층을 일컫는 말이 되기도 한다. 주목할 것은, 관객이 눈앞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배우의 표정과 대사, 연기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연극의 대표적인 반복 동작으로는 △손 쳐들기 △손 벌리기 △성냥 켜기 △물건 던져서 주고받기 등을 뽑을 수 있다. 1장에서 뭔가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던 ‘손 쳐들기’ 동작이 6장에 가서는 누군가에게 굴복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동작’은 극 내내 반복되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동작’의 중요성은 배우들이 2초에 한 번씩 켜지는 조명에 맞춰 지정된 행동을 해야 하는 고난도 장면을 통해 강조되기도 한다. 음향에는 △라디오 소리 △사이렌 소리 △왈츠곡 등이 있다. 왈츠곡은 제2장 가면무도회에서 처음 흘러나온다. 배우들은 음악에 맞춰 드레스와 연미복을 차려입고 왈츠를 춘다. 장면이 바뀌고, 왈츠곡은 라디오와 사이렌 소리가 된다. 직전 씬에서 음악에 맞춰 왈츠를 췄듯이, 이번에는 사이렌 소리를 배경 삼아 심폐소생술을 한다. 왈츠곡과 왈츠도, 사이렌 소리와 심폐소생술도, 모두 혁명의 ‘춤’인 셈이다. ‘혁명’은 보통 뜨겁고 격정적인 이미지를 준다. 단체로 구호를 외치거나 깃발을 휘두르다 장렬하게 스러지는 군중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취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혁명의 춤’에 등장하는 혁명에는 그런 정서가 모두 제거돼 있다. ‘혁명’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구조화한 뒤에 그것을 해체하고 나열했다가 다시 합칠 뿐이다. “가장 연극적인 것은 그 순간을 느끼는 것” 김우옥 연출가가 강조한 공연의 포인트는 ‘연극적 요소’이다. 그는 연습 시간 내내 학생들에게 ‘기계처럼 움직일 것’과 ‘각자의 소리를 더욱 연극적으로 표현할 것’을 지시했다. 김 연출가는 ‘연극적’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우리는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 알게 모르게 연극적이게 된다. 대화의 분위기를 바꾸거나, 내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들이 그렇다”며 “그런 노력을 연극에서는 더 두드러지게 하는 거다. 하나의 소리를 가지고도 극적인 감동을 주기 위해 고민하는 것, 거기에 연극성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출가는 연극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장면으로 ‘제6장 시체’를 뽑았다.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무대 한쪽에는 손이 묶인 시체가 쓰러져 있다. 한 남자가 그 시체의 외형을 따라 바닥에 테이프를 두른다. 사진기를 든 누군가가 그 장면을 촬영한다. 조금 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여자가 시체 앞으로 다가와 가만히 무릎을 꿇고, 이내 퇴장해 버린다. 그는 “저 시체는 무엇이고 왜 죽어있는지 우리는 전혀 모른다. 그런데 한 여자가 어느 순간 시체 앞으로 걸어 나와서 가만히 있다가 떠난다. 저게 뭘까. 저 둘은 무슨 사이지. 애인인가? 어머니인가? 계속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며 장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관객에게 계속 생각의 여지를 주면서도, 개인의 경험에 의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는 구조주의 연극을 감상하는 방법에 관해 “그저 느끼고 받아들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뭔가를 전부 알아야만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극의 내용은 잘 파악이 안 되더라도, 무대 위에 보이는 사건이나 장면을 감상하며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와 관련된 연극의 정점은 마지막 장면에 있다. 공연 내내 따로따로 등장했던 ‘소리’들이 3부에서 차례대로 등장해 무대를 가득 메운다. 김 연출가는 이 장면을 두고 “우리 연극 비장의 무기”라고 강조했다. 관객들 역시 해당 장면을 통해 그가 내내 말했던 ‘연극적 요소가 주는 감동’이 무엇인지를 체험할 수 있다. “공연을 통해 목숨을 건 에너지 얻어가길” 배우로 참여한 연기과 소속 이정은(25)씨와 곽민수(25)씨는 연극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나를 내려놓고 모두와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밝혔다. ‘혁명의 춤’은 이야기의 부재가 주는 공백을 다른 구성 요소로 채워 넣어야 한다. 때문에 더 깊이 있고 심오한 연기가 필요하다. 자의식을 내려놓고, 마치 혁명을 도모하는 군중이 된 것처럼 집단과 하나가 돼야 한다. 이런 점을 두고 이씨는 “무대 위에서 혁명을 위해 목숨을 거는 듯한 우리의 에너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곽씨 역시 “뭔가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건 고귀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이 공연이 주는 목숨을 건 에너지를 통해, 본인들이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한 무언가를 해나가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들은 관객에게 특정한 의미나 메시지를 강요하고 싶지 않아 했다. 대신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연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밝혔다. 배우가 뽑은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오감 자극’이다. 곽씨는 “연기를 통해 시각을, 소리의 진동을 통해 청각과 촉각을, 무대장치를 통해 후각을 자극할 수 있다”며 “마지막으로 공연이 끝난 뒤에 ‘이 공연 맛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미각을 충족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에 대하여 연극의 조연출을 맡은 심지후씨는 최근 공연계의 이슈가 “어떻게 하면 관객을 생각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이라고 밝혔다. 본래 예술이란 메시지에만 치중하다 보면 촌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면서도 예술적 세련됨을 지키는 방법에 관해, 심 연출가는 이런 구조주의 연극이 해답이 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관객이 자발적으로 자신만의 드라마를 쓸 수 있다. 그 자발성이 곧 연극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방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다. 과연 우리는 이야기가 없는 연극을 관람하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이야기에 지친 관객, 혹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느끼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 공연이 새로운 창구가 될 수 있겠다. 한편, 연극 '혁명의 춤'은 8월 '더줌 아트센터'에서 기성 배우 열 한 명과 함께 무대에 오를 계획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지난 4월 10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글로벌캠퍼스 통번역대학(4개 학과) 폐지와 AI융합대학 신설 등을 포함한 학칙개정안을 공고했다. 이에 통번역대학 재학생들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탄원서 서명을 진행했다. 서명을 통해 폐과 예정인 4개 학과(독일어통번역학과, 말레이·인도네시아어통번역학과, 스페인어통번역학과, 이탈리아어통번역학과) 소속 학생 994명 중 778명이 해당 사안에 반대했다. 통번역대학 비상대책위원회 '하이픈'은 해당 탄원서를 지난 4월 13일 이사회에 전달했다. 학생들은 탄원서를 통해 폐과 조치 철회를 주장했지만 학교 측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학칙 개정안은 이사회를 통해 가결됐다. 대학평의원회(이하 ‘대평의’)를 하루 앞둔 지난 4월 18일, 통번역대 학생회장과 폐과 대상 학과 학생대표자들은 교무위원회가 열린 서울캠퍼스에서 피케팅 시위를 진행했다. 다음날 열린 1차 대평의에서는 오태경(융합인재 19) 학우의 평의원 자격 논란으로 해당 사안이 연기되면서 학칙개정안은 여드레 뒤 열린 2차 대평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2차 대평의 결과 학칙개정안 관련 안건은 학교 구성원들과의 상의와 학부 신설에 대한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부결됐다. 그러나 학교 측은 대평의에서 부결된 사안을 이사회에 올렸다. 대평의는 의결 기구가 아니라 심의 기구로 학교 측에서 이를 따를 강제성은 없다. 그러나 대평의가 학사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법정기구라는 점에서 이사회에 의결 결과가 반영되지 않은 점은 많은 학우들의 의문을 샀다. 결국 학교 법인은 지난 4월 28일 재단이사회를 열고 학칙개정안을 승인받았으며 현재 해당 안건은 가결됐다. 이사회 결정에 따라 해당 학칙개정안은 다음 해 신입생 모집에 반영될 계획이다. 한편 통번역대학 교수와 학생회 측은 이를 교육부에 알리며 대응에 나섰으며 학교를 상대로 학칙개정안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서진 기자 (seojin1122@naver.com) 장유민 기자 (kell178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