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 여기 우연한 계기로 만난 두 남녀가 술잔을 부딪친다. 살짝 붉어진 얼굴로 꽤 즐거워하는 두 사람. 초록색 소주병들이 테이블 구석탱이에 쌓이고, 주인공들은 혀가 꼬인 목소리로 진솔하고 대범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급격히 마음의 벽을 허문다. 계산하고 나와서도 집에 가기 아쉬운지 술집 밖 담벼락에서 갑자기 키스를 시작하고, 키스는 남자주인공(거의!) 집 침대에서 이어진다. 애석하게도 방심위 심의 문제로 중간 과정은 생략. 그리곤 아침에 눈을 뜨는 두 사람. 어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여자는(혹은 남자도) 너무 쪽팔린 나머지 급하게 자리를 피한다 -남자는 벗고 여자는 꼭 나시를 입고 있다. 대체 왜..?- 집 와서 쪽팔림에 이불킥 한 번 날려주지만, 거짓말처럼 두 주인공은 원나잇을 계기로 가까워진다. 미디어 속 원나잇 연출은 더는 낯설지 않다. 섹스 묘사하는 장면 좀 나왔다고 19금 딱지 붙는 건 옛날이야기다. 원나잇은 보통 주인공 두 명의 서사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면으로써 쓰인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원나잇 이후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의 걱정이라곤 ‘아, 앞으로 저 남자 어떻게 보냐’ 뿐이다. 과연, 술김에 원나잇 한 여자들이 부끄러워하며 이불이나 쾅쾅 찰까? 절대 아닐걸. 콘돔은 꼈나? 몇 번 했더라? 아 이 새끼.. 안에 한거 아냐? 얘 성병 있으면 어떡하지? 설마..몰카는 없겠지? 원나잇 한 여자는 이런 걱정을 한다. 그런데 지금껏 원나잇을 소재로 사용했던 미디어는 죄다 이 사실을 외면한다. 드라마가 현실을 얼마나 잘 구현했는가, 이름하여 ‘현실 고증’을 잘 수행하는 것이 잘 만든 드라마의 중요한 기준인 지금, 왜 섹스 이후 벌어지는 다양한 일에 대해서는 왜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평가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가? 우린 왜 섹스 이후의 여성에게 이토록 무관심한가. 네? 제가 성병이라고요? A(25)는 작년 5월 성병 진단을 받았다. 평소 산부인과 검진을 꺼리는 편이 아니었으며, 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레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내원하여 검진받았으나, 성병 검사를 따로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와 관계 중 콘돔에 피가 살짝 비친 것을 발견했고, 생리 전 증상이겠거니 짐작했으나 며칠이 지나고도 생리를 시작하지 않아 산부인과에 내원했다. 초음파를 보던 중 자궁 쪽에 문제가 생긴 것이 출혈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연히 곤지름(콘딜로마, 성기 사마귀)까지 진단받았다. “청천벽력이었어. 너무 당황했지. 큰일 났다, 아니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진짜 무서웠던 것 같아. 내가 성병에 걸리다니?” A는 산부인과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는 편이었지만, 이전에 성병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현 애인 이전에 유일하게 관계를 맺었던 전 남자친구가, 성관계는 처음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병이란 모르는 사람과도 별 개의치 않고 잠자리를 많이 가지는 사람이라던가, 성을 사고파는 일을 하는 성 노동자, 혹은 성 매수 남성들이 걸리는 병이라고 알고 있었다. 단 두 명과 관계를 맺어도 걸릴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병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 기사는 대학알리+에 업로드되는 프리미엄 콘텐츠로, 무료 회원에게 공개됩니다. 대학알리+ 구독하고 기사 전체보기
지난달 15일, 인하대에서 한 대학생이 동급생에 의해 성폭행당한 뒤 학교 건물에서 추락해 숨지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들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대학 내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파장이 컸으나, 그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사회가 이를 다루고 소비하는 방식이었다. 인하대 동급생 성폭행 사망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와 같은 인하대 재학생이었던 ‘김XX’이라는 한 20대 남성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가해자는 그 한 명이 끝이 아니다. 가해자 김XX 그 너머에 언론, 대학, 정부기관이라는 공범‘들’이 있었다. 언론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사건의 본질은커녕 오로지 ‘조회수 경쟁’에 치중한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망인의 마지막 길을 어지럽혔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표한 모니터 자료에 의하면, 선정적 표현을 사용한 언론사는 <연합뉴스>, <SBS> 등 60여 곳, 성차별적 표현을 사용한 언론사는 <중앙일보>, <뉴시스> 등 40여 곳에 달한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실청요강 제3조 보도준칙에 따르면, 범죄·폭력·동물학대 등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저속하게 다뤄서도 안 된다. 그러나 조회수 경쟁 앞에서 이런 원칙은 너무나도 쉽게 잊혔다. 자극적인 보도를 정정하라는 시민단체와 여론의 끊임없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보도 직후 성차별적 표현을 수정해 기사를 재출고한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언론사는 여전히 문제가 된 헤드라인을 수정하지 않았다. 관련 사과 또한 없었다. 정의를 말해야 할 언론이 되려 망인과 그 유가족들을 부정하게 상처 입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누구 하나 ‘죄송하다’ 말하는 기자가. 언론사가 없다. 사건 발생 이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의 신상이나 현장 발견 사진을 찾거나 성폭력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를 다시 성희롱하는 등 도를 넘어서는 2차 가해 발언이 횡횡했다. 이 같은 2차 가해의 도화선은 불필요한 선정적 ·성차별적 보도로 망인을 모욕한 언론임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또한, 한 가지 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언론의 유구한 성범죄 관련 성차별적 보도 관행이 문제가 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기사를 정정하거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는 ‘무대응’이라는 속편한 해결책을 택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대체 언제까지 ‘女대생 캠퍼스에서 옷 벗은 채 발견’ 따위의 저급한 헤드라인에 마음이 헤집혀야 하는 건지. 사건이 벌어진 인하대라고 또 결백한가. 인하대는 최근 익명의 인하대생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학내 성차별적 대학 문화를 비판하고자 교내에 부착한 대자보를 사전 승인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단 철거했다. 대학 사이트 내 성교육 QnA 게시판의 ‘천황폐하만세’는 버젓이 방치하고 재학생으로서 마땅히 부착할 수 있는 대자보는 일전의 다른 미승인 게시물과 비교했을 때도 더 빠르게 철거한 것은 과연 해당 대자보가 정말 ‘미승인 게시물’이었기 때문인가? 인하대에 묻고 싶다. 인하대 총학생회도 그렇다. 인하대 총학생회는 사건 발생 다음날 ‘눈물을 삼키며,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라는 제목으로 사건 관련 입장문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입장문에는 피해자를 추모한다는 명목의 ‘감정적 호소’만이 빼곡했다. 가해자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해당 입장문이 보여주기식 입장문이든, 아니든 그 여하와 상관없이 학생들을 대표해야 할 학생자치기구가 보일 행보는 아니었다. 정부기관도 문제다. 교육부가 이번 사건을 두고 재발 방지책으로 내놓은 대안은 ‘대학 안전관리 계획’이다. 학내 야간 출입관리 및 취약시간대 순찰 강화, CCTV 증설 등이다. 이는 교육당국에서도 이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탁상행정’에 불과하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 사건이 단순히 ‘CCTV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인가? 사건 발생 당시에도 이미 인하대에는 765대의 CCTV가 있었다. 더하여, 비단 캠퍼스뿐만 아니라 CCTV가 있는 곳에서도 성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벌어진다. 야간 순찰 강화도 마찬가지다. 성폭력범은 해가 진 후에만 그 고개를 쳐드는 늑대인간이 아니다. 성폭력은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시간과 관계없이 벌어진다. 이 당연한 사실을 왜 교육부만 모르는 걸까? 성폭력의 원인은 캠퍼스 내 만연한 강간문화와 낮은 젠더감수성, 그리고 이를 용인해온 사회다. 대학은 ‘학생을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기르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인재의 덕목에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도덕성, 젠더감수성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은 최근 5년 간 1206건(2019년, 교육부 통계)이나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과 교육당국은 정말 아무런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학은 정말 ‘학생’을 위한 공간이 맞나. 맞다고 한들, 그 학생에 ‘여학생’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지난 24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 사건을 두고 “학생의 안전 문제지 남녀를 나눠 젠더갈등을 증폭하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정말 단순히 ‘안전’ 문제로 퉁칠 사안인가. 대학 내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김현숙 장관은 모르나. ‘그러게 여학생이 왜 늦은 시간까지 남학생이랑 술을 마셔서’라는 둥 피해자가 여성으로서 정숙하지 못했다는 둥 피해자의 행실이 사건 발생 원인인 양 매도하는 2차 가해가 판치고 있다는 사실을 김현숙 장관은 몰랐나. 인하대 성폭행 사망사건은 전형적인 ‘여성살해 사건’이다. 안전의 관점에서만 이 사건을 바라본다면 그건 사건의 본질을 벗어난 빵점짜리 분석이다. “여자라서 죽었다”고 하지 말라고 반박하기 이전에, “그러게 왜 여자가 늦은 시간에 남자랑 술을 마시냐”며 범죄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악마들의 이름부터 호명해라. “젠더갈등 조장하지 말라”고 지적하기 이전에, 강력범죄 피해자의 80% 이상이 여성이라는, 그중에서도 95%가 성범죄 피해자(경찰청 범죄통계, 2020)라는 비참한 현실부터 직시하라. 젠더갈등을 조장하는 건 ‘여자라서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성차별을 성차별이라 말하지 못하게 하는, 여성혐오 범죄를 치안 문제로 퉁치는 대한민국 사회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젠더갈등 조장하지 말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아무런 죄도 없이 죽어간 여성들을 지우지 말자. 이제는, 더 이상, 제발. 정윤채 객원기자 sunwillrise@chungbuk.ac.kr
글러브에 안착하는 야구공처럼 캐치볼을 하고 있는 세 친구의 관계는 끈끈해 보인다. 이렇듯 기태, 동윤, 희준은 우정을 다지며 추억을 쌓아나간다. 하지만 괜한 자존심에, 마음은 그게 아니지만 자꾸만 엇나가는 행동에 좋았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하고 한 친구는 죽음을, 한 친구는 전학을, 한 친구는 자퇴를 하며 추억은 비극으로 전환된다. 기태의 죽음의 이유를 알기 위해 아버지가 친구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이는 추리소설의 전개 방식과 비슷해 보인다. 죽음으로 영화가 시작돼 죽음의 이면을 추리하는 서사 방식은 유명한 고전영화 <시민 케인>을 떠오르게 한다. 섬세한 심리묘사,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죽음 뒤 숨겨진 이면을 나타낸 영화 <파수꾼>은 2011년에 개봉된 윤성현 감독의 독립영화 데뷔작이다. 윤성현 감독은 <아이들>, <여행극>, <바나나쉐이크>까지 그동안 남성 위주의 관계에 대한 서사를 얘기하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렇기에 <파수꾼>은 2008년부터 찍혀져 온 단편영화의 연장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약 3편의 영화를 함께한 변봉석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방식으로 진행시켜 현실감과 사실감을 생동감 있게 나타내주었다. 끊이지 않고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대사와 배경, 미술, 편집을 최소화한 그의 연출은 리얼리티라는 단어가 확 와닿을 정도로 우리의 삶의 단면을 떠오르게 한다. 감독은 “내가 보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얘기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자기 안에 잠재돼있는 트라우마와 상처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영화에 진정성과 진심이 담겨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만들어 나갔고, 연기가 중요하다 보니 배우들과 수많은 인터뷰 작업을 거쳐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마치 눈앞에서 보듯 생생한 표정과 내 옆에서 듣는 듯한 대사 한마디가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으로 만들었다고 느끼게 하지만, 윤성현 감독은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닌 살아오면서 느꼈던 외로움, 죄의식 같은 파편적인 감정들을 모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기 전, 여자들은 미묘하고 사소한 것 하나만으로도 쉽게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남자들은 만남과 이별이 단순하며 관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파수꾼’은 남녀에 관한 선입견을 뒤집어 놓았고, 소년들 간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추억과 상처들을 되짚어 보게 하였다. 소년들의 만남과 이별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큰 테마로 보인다. 세 소년의 이별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해 보자면 기태는 동윤과 희준에게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너한테 사과 받고 싶지도 않고”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후 기태는 어느샌가 현실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기태는 왜 두 친구에게 이별을 선고받았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의견을 얘기해 보자면 약해 보이고 싶지 않으려는 자존심과 더불어 강한 인정욕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태는 항상 무리의 우두머리 자리에 있다. 그러한 기태의 권력 욕심은 두 친구의 관계에서도 작용한다. 존중받고 싶어서, 최고가 되고 싶어서라는 인정욕구로 인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희준은 기태로 인해 살짝 기가 죽은 상태로 등장하고, 동윤은 기태에게 거의 맞춰주다시피 관계를 이어 나간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기태는 마음과 다른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희준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동윤에게 세정이는 몸을 파는 애였다며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한 기태의 행동과 말에 두 친구는 돌아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습이 기태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텅 빈 거실 속 혼자 소파에 앉아있을 때, 아파트 풍경을 베란다에서 홀로 바라볼 때 보이는 그 뒷모습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나 외로워’, ‘나도 사랑받고 싶어’라는 그 마음이 진짜이지만, 기태는 외롭지 않은 척, 다 가지고 있는 척 마음과 다르게 행동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 동윤은 기태를 상상하며 혼잣말을 주고받고 희준은 끝까지 기태의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한다. 비록 두 친구는 기태가 죽기 전 절교를 선언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 ‘그래도’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동윤과 희준이 기태를 진심으로 미워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받은 상처보다 기태와의 추억이 분명 더 컸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바다. 그렇다면 왜 기태의 죽음을 선두로 영화는 전개되었을까. 뉴스 기사나 TV로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상황만 떠올리게 되고 죽음의 뒷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감독은 죽음을 일차원적인 의미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 죽음의 이유를 파고들어 그 이면과 상황을 알게 되는 서사로 전개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죽음은 증발되는 것이 아니라 묵직한 기억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감독은 죽음의 이면을 찾아가는 서사를 만들기 위해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면서 전개되는 교차편집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쭉 카메라를 들고 찍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기법은 윤성현 감독의 개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움직이는 화면이 있었기에 주인공들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직선을 그리라고 하면 우리는 일직선이 아닌 빼뚤빼뚤한 선을 그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서투름의 감정묘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찍는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은 아닐까. <파수꾼>에는 노란 조명이 많이 등장하는데 호박빛 색감은 옛 추억을 회상케 한다. 감독은 GV 당시 과거의 향수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더불어 옛 시절의 기억이기에 관객 또한 자연스레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란색은 발랄한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스포츠 규칙상 옐로카드가 있듯이 정지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빛바랜 노란 색감은 소년과의 우정, 그리고 이별을 모두 상징하는 색깔로 적합해 보인다. 작품에는 가로등이 곳곳에 등장한다. 퇴근 후 밤길을 거닐며 지나치는 가로등, 홀로 벤치에 앉아 마주 보는 가로등을 떠올리게 하기에 영화 전반에는 우울하고 슬픈 정서가 드리운다. ‘파수꾼’은 기찻길, 소년, 교복 등 청춘영화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발랄한 청춘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청춘영화는 씩씩해야 하고 밝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이러한 시도가 새로운 도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첫 장면, 초점은 날아가 있고 화면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모든 화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첫 장면은 왜 초점이 날아가 있을까. 10대들의 세계에는 비행과 탈피, 그리고 폭력이 권위의 상징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그때는 좋기만 했던 권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를, 그리고 비극의 감정을 안겨다 주기에 그러한 슬픔을 말해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허세와 권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함께 말해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동시에 흐릿한 장면은 기태의 심정이기도 하다. 마음은 여리고 사랑받길 원하지만 폭력을 저지르는 겉과 속이 다른 자신을 보며 괴로워하는 마음을 상징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 왜 동윤이 기태에게 “네가 최고다”라고 말해주었으며, 동시에 기태의 환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동윤은 기태에게 상처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태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냥 한번 져줬으면’, ‘눈감아주고 넘어갔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라도 기태를 상상하며 “네가 최고다”라고 기를 세워주는 말을 한 것이다. 기찻길에서 캐치볼 놀이를 하는 세 친구를 보며 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공은 잡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데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기에, 그러한 관계를 공으로 대신하여 상징한 것이다. 기찻길의 상징도 생각해보건대, 길이라는 것은 어디로 갈지, 어느 방향으로 갈라질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또한 사람 일이기에 그러한 우리들의 삶을 기찻길로 표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금껏 살아온 기억만 해도 대인관계가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관계를 고민하곤 한다. 그로 인해 작품에 더 많이 공감하게 되는 게 아닐까. 힘들고 아플 때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을 보고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다. <파수꾼>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구나 겪었을 법한 관계와 소통의 부재를 보여주어 다시금 과거를 떠오르게 해주고, ‘나도 그때 그랬었지’라는 생각을 떠오르게 해주어 마음을 위로해준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관계'라는 소재와 추리소설 형식으로 전개되는 독창적인 전개 방식이 만나 독립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학창 시절, 필자는 학교라는 틀 안에서 소외된 존재였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기대어 삶으로써 나의 삶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곤 했다. 이 영화를 보고 큰 위로를 받았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한 편의 영화가 큰 위로와 극복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파수꾼>을 보고 다시금 마음을 치유 받았으면 좋겠다.
최근 정부가 유초중고 재정 일부를 대학에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세우자, 교육계는 일제히 반발했다. 지난 14일 용산 대통령실 맞은편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편안 반대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전국교육대학생연합(교대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총 11개 교육 주체 단체가 주최했다. 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대학 재정 위기 해결의 일환으로 유·초중등 교육 재원으로 활용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고등교육(대학)·평생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 65조 1천억 원 규모 가운데 3조 6천억 원가량을 대학에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전국대학교육협의회(전대협) 측에서 주장해오던 방안이었다. 기자회견에서는 이를 반대하며 “윤석열 정부의 유·초중등 교육과 고등교육 갈라치기”이며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인 꼴”이라고 규정했다. 고등교육 예산 확보는 해당 방안이 아닌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을 별도 신설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 20여 년간 교육교부금은 약 4배 증가했으나, 학령인구는 34% 감소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주최 측은 “교육 현장은 지원과 투자가 절실하다”며 교육재정이 확대되고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즉각 반발했다. 전교조 정한철 부위원장은 “학생 수가 감소하는 건 사실이나,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학교 수와 교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새로운 주거 도시의 학급 수는 꾸준히 늘고 있으며,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학교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교대련 이혜진 의장은 과밀학급 문제를 지적하면서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교육 투자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교총 신현욱 조직본부장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급당 30명 이상인 과밀학급은 2만 개가 넘는다. 이는 곧 교육의 질 저하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노후 학교 문제 개선을 위해서도 재정 감축은 불가하다고 지적했다. 신현욱 조직본부장은 “전국 초중고 건물의 40%는 30년이 넘는 노후건물”이라며 “석면이 철거되지 않은 학교는 5,400여 곳으로 전체의 45.7%에 달하며, 학생 체격이 커졌음에도 책걸상 중 30%는 구매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분필 칠판과 화변기 비율도 30에서 40%에 달한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신 조직본부장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에 대해 “교육이라는 공든 탑이 무너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한철 부위원장은 “학령인구 감소를 기회로 학생 한명 한명을 잘 교육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초중등 교육재정을 유지 혹은 증가시킬 이유가 차고 넘친다”고 강조했다. 박주현 기자 qkrwngus30@naver.com
3년 만에 개최된 오프라인 퀴어퍼레이드, 모두의 행사 되다 지난 7월 16일, 서울광장이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수많은 퀴어가 서울광장에 모여 슬로건인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를 외쳤다. 이번 제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 만에 열린 오프라인 축제다. 그만큼 참가자들의 기대도 컸다. 들뜬 분위기 속, 트렌스젠더 활동가 박에디, 비건 퀴어 페미니스트 연극배우 이리가 사회를 맡은 무대 위에서는 브라질리언 앙상블 퍼커션 '호레이', 국내 유일 LGBTQ+ 보이그룹 '라이오네시스', 소수자연대풍물패 '장풍' 등 다양한 퀴어 공연 팀이 화려한 공연을 선보였다. 한편, ‘혐오 집회’ 도 이날 서울광장 반대편에 자리했다. 혐오 집회는 매년 퀴어퍼레이드가 열릴 때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혐오 집회자가 부르는 아리랑 소리가 너무 커 귀가 먹먹했다. 그럼에도 퀴어퍼레이드 현장에 참여한 이들은 불쾌한 기색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이 혐오에 맞서는 방법은 ‘웃음’ 이었다. 서울광장 진입 횡단보도 앞, ‘부모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라는 피켓을 든 혐오집회자에게 축제 참가자들은 ‘힘내라’ ‘파이팅이다’ 라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몇몇은 악수를 요청하기도 했다. 잠시 피켓을 내려놓은 혐오집회자 역시 웃으며 악수를 받고 가볍게 포옹을 했다. 이를 목격한 A씨는 ‘이 순간만큼은 퀴어퍼레이드가 모두의 축제가 된 것 같다’ 며, ‘실은 저들(혐오집회자들)도 모두 즐기고 있을 것이 아닐까’ 라며 농담을 건넸다. 흐린 뒤 맑음... 희망의 빛은 퀴어에게 퍼레이드가 반쯤 진행되었을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때아닌 폭우에 공연이 중단돼 광장 바깥의 텐트로 자리를 피했다. 비가 그치지 않은 채 행진이 시작되어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각각 우산이나 우비를 쓴 채 행렬을 따랐다. 이날 행진은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을지로 입구, 종각, 명동을 돌아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퀴어 풍물패 ‘바람소리로 담근 술’ 외에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친대학생네트워크(박대넷)' ’청년정의당‘ 등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수많은 인파가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우자, 길가에서 이를 지켜본 몇몇 시민이 손을 흔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 시민은 멈춘 차량에서 몸을 내밀어 ’퀴어 퍼레이드 파이팅, 힘내세요‘ 라며 큰 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행진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서울광장의 잔디는 축축했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장내는 어수선했다. 그러나 광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체 공연‘ 을 연 퀴어들로 다시금 시끌벅적해졌다. 몇몇은 무반주로 화려한 프리스타일 댄스를 추기도 했고, 단체로 트럼펫과 색소폰을 불며 즉흥 재즈 공연을 선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 백발의 노인이 이들에게 천천히 다가가 팔을 양옆으로 벌리며 무언가 말을 전했다. 외국인 트럼펫 연주자는 그 말을 이해하지는 못한 듯했지만, 활짝 웃으며 노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언어를 초월한 사랑이 서울광장에 꽃피는 순간이었다. 이날 행사가 끝날 무렵, 박친대학생네트워크(이하 박대넷) 소속의 성공회대학교 모두의화장실 송성윤(이하 송) 씨를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박대넷은 대학의 성소수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자치기구들의 연대체다.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성평등위원회, 고려대학교 소수자인권위원회, 성공회대학교 인권위원회 및 모두의화장실이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송: 저는 성공회대학교 모두를 위한 모장실 문화 만들기 모임 모모에서 활동하고 있는 송성윤이라고 합니다. 작년에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에서 활동했었는데, 올해 3월 16일에 모두의 화장실이 처음 지어지게 됐어요.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축제는 재밌게 즐기셨나요. 송: 네, 저희가 계획을 했던 것 중에 ’성공회대 민속문화연구회 탈‘과 풍물을 함께 하면서 행진을 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함께 기획했었는데 아쉽게도 비가 와서 진행은 못 했어요. 비록 비가 왔지만, 대신 덥지 않아서 사람들도 계속해서 조금 덜 지친 상태로 행진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저희가 걸어 다닐 때마다 주변에 계신 분들이 많은 환호하고 환영해 주셔서 즐겁게 행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나 다들 너무 즐거워 보이고, 여운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오늘도 반대편에 혐오 집회가 아주 많았어요.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송: 언제나 퀴퍼를 개최할 때 항상 혐오 세력들은 존재했었어요. 하지만 지금 여기에 우리가 모여 있다는 게 중요하잖아요. 우리가 함께 모여서 함께 놀기도 하고, 그 사람들(혐오 집회자들)에 대해서 우리의 존재가 있음을 증명하는 자리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순간에 이렇게 많은 퀴어들이 모인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축제 소감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송: 준비하면서 분명 힘든 부분들도 있었지만, 막상 퀴퍼에 참석하니 아주 많은 에너지를 받아서 행진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연대하다 보니 서로서로 서로가 존재함을 알게 되고 또 우리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서울시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굉장히 좋았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라는기억 연숙씨’에는 모든 기억이 잊혀져 가지만 유일하게 한 남자를 기억하는 여성, 연숙씨가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기억해 주는 한 여성을 옆에서 든든히 지켜주는 규홍씨가 등장한다. 쓰라린 결핍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보듬어주는 두 사람을 보고 사랑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하는 규홍씨의 따뜻한 사랑, 한 사람의 곁을 계속해서 지켜주는 연숙씨의 사랑을 보고서 필자는 진심의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 사람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진실되게 느껴지는 영화이기에 진심이 담긴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심미희 감독은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감수하고 그 사람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근원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절대적인 기억과 관련해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대라는기억 연숙씨’의 제목을 보고서 ‘그대라는’과 ‘기억’을 붙인 의도는 잊혀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바로 당신임을 나타내고 있다. 서로가 유일함으로 빛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따뜻한 진심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심미희 감독과 인터뷰를 나눴다. 이하 일문일답. Q. ‘그대라는기억 연숙씨’를 연출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방송 다큐멘터리 피디로 일을 하고 있다. 가정의 달 특집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 제작사 측에서 후속으로 영상을 만들자고 제시해 주셨다. 제작사 대표님께서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제안 주셔서 제가 메가폰을 잡았고, 저 또한 아버님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어서 연출 제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촬영 기간은 2018년부터 시작해서 2019년까지 찍었고, 그 이후에 계속해서 편집을 했다. Q. 촬영하면서 느꼈던 감정 혹은 생각 등에 관련하여 말씀 부탁드린다. 할아버지께서 시한부라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할머니께서도 언제까지 살아계실지 모르는데 할아버지께서 시한부라는 소식에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두 분께서 따로 병원에 계시면서 혼자서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일 년간 촬영을 해서 그런지 이야기가 많이 축약이 되었는데 스크린에 보이지 않았던 부분은 ‘시간’이었다. 할머니께서 식사를 하실 때 최소 1시간 남짓 걸린다. 더불어 할머니께서는 새벽에 두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셔야 한다. 그런데 영화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없기에 아쉬웠다.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극복할 만큼 무한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에, 할아버지의 보살핌이 감동적이었다. Q.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할머니께서 중환자실에 계실 때 할아버지께서 병원으로 찾아오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봤을 때, 할머니께서 유난히 밝으셨고 할아버지의 말을 잘 들어주었기 때문에 두 분의 관계가 애틋해 보였다. 두 분 모두 아프신데 서로의 눈빛 속에서 서로를 애정 하는 느낌이 들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입을 떼지 않아도 눈으로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침묵 속에서 피어난 애틋함이 눈에 보여서 마음이 뭉클했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할아버지의 생신잔치 장면이었는데,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의 하이파이브를 받아주지 않고 가족들의 하이파이브만 받아주었기에 그 부분이 재치 있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할머니의 모습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편하게 관람했으면 싶었다. Q. 계속해서 서로의 곁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넘어서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기에 두 분이 서로의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래간 옆에 있었기에 이성적인 사랑을 넘어서서 가족의 사랑으로 발전한 듯 보였고, 그렇기에 두 분은 서로가 없으면 살지 못하는 관계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분의 사랑은 정의하기 어렵지만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사이이고, 그래서 같이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Q. 어떤 의미로 ‘그대라는기억 연숙씨’라는 제목을 지었는지. 할머니께서는 오직 할아버지만을 기억하고 계셨다. 기억을 잃는 도중에도 할아버지 만은 할머니 곁을 계속해서 지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더군다나 할머니께서는 ‘이연숙’이라는 할아버지의 부름에만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직 ‘이연숙’이라고 불릴 때만 반응하기에 ‘그대라는기억 연숙씨’라는 제목이 알맞겠구나 싶었다. 할머니께 남은 기억은 할아버지밖에 없으니까 이 제목이 타당하다 싶었다. Q.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영화는 누구나 쉽게 찍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 혹은 가족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많이 찍어서 추억을 마음속에 품고 각자만의 영화를 완성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족 분들도 영화가 만들어진 것을 보고 두 분을 기억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함을 전해주셨다. 그렇기에 관객분들도 이 영화를 보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영상 혹은 사진을 많이 남겨두었으면 좋겠다. Q. 아픈 사랑이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인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랑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것만으로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픈 사랑이더라도 정말로 사랑한다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에게 큰 만족감을 주는 일이 아닐까. 힘든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아픔과 상처를 감수하고 옆에 있어주는 것이야말로 믿음을 주는 일인 것이다. Q.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과도한 연출을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질문 혹은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고, 일상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꾸며진 상황 말고 날것 그대로 표현되길 원했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담으려고 개입하지 않으려 많이 노력했다. 실제로 영화를 들여다보면 대화 자체가 많지 않다. 제가 여쭤보는 것 또한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여쭤보지 않는다. 할아버지께 감사했던 것은 먼저 이야기를 해주시려는 노력이 보여서 그 점이 감사했다. 되도록 제 생각이 개입되지 않도록 노력했기에 이 영화는 두 분이서 만들어간 다큐멘터리라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Q. 차기작 계획 말씀 부탁드린다. 삶과 죽음을 모두 영화 속에 담아내었는데, 다음 차기작 기회가 주어진다면 죽음보다 삶에 관련된 것을 만들고 싶다. 아직까지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힘들고, 정이 많아서 슬픔을 감당하기엔 벅찬 감이 있다. 삶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슬픈 상황이더라도 긍정적인 기운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사람의 ‘생’에 관련된 차기작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기도 하다.